새삼스런 얘기지만 국회는 민의를 수렴해서 국정에 반영하는 것이 임무이자 기능이다. 그래서 국회를 민의 전당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국회는 더 이상 민의의 전당일 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히려 추상같은 민의를 외면하고 있다는 조소가 나라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에 대해 무용론이 나오고 격앙된 해산론이 나오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성싶다.국회를 여는데 무슨 전제조건이 필요한가. 그것도 여당이 아닌, 야당이 개회에 조건을 내거는 이상한 형국 앞에 우리는 아연해 하지 않을 수 없다. 날치기한 노동법의 통과자체를 무효화해야 한다느니, 재개정안을 내야 한다느니 하면서 교착상태에 빠진 개회협상은 헌정사상 최대의 정경유착비리인 한보사태를 앞에 두고도 역시 사소한 절차문제로 질척거리고 있다. 내달부터 날치기한 새 노동법이 발효하게 돼 있는데도 정치권은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이다.
조사특위구성비율이나 TV청문회가 중요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5조원의 은행돈을 축낸 부패 기업인 정태수씨에 대해서는 19일까지 1차 수사를 마무리해야 할 처지다. 야당은 입만 열면 검찰이 예단을 갖고 수사를 한다느니, 또 다른 외압에 의해 축소수사를 하느니 하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면책특권까지 보장된 국정조사권 발동이 가능한 국회의 문을 여는데는 별로 뜻이 없어 보인다. 이런저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국회를 즉각 열도록 해야 한다.
검찰은 10일 한보사태의 정치권 연루의혹과 관련,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 가신출신인 홍인길 의원과 또 다른 여당소속 정재철 의원을 소환해 외압여부를 조사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대리인」격인 권노갑 의원도 권의원이 출두하는 11일 같은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 시중에는 정치권 인사들의 무더기 소환사태에 대해 『국회가 수수방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같다』는 냉소적인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구정을 핑계로 시일을 끌어왔던 여야가 10일 총무회담을 가졌지만 예의 해오던 말씨름 끝에 임시국회일정을 잡는데는 또 실패했다. 역시 이날의 만남에서도 청문회의 TV중계문제가 걸림돌이 됐다. 우리는 여야 정치권이 입으로만 국회개회를 주장하면서 실상은 자신들의 치부를 우려한 나머지 원치 않는다는 시중의 얘기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정치권이 이 엄청난 의혹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도 국회는 속히 열어야 한다. 어떻게 이처럼 비등한 여론을 무시할 수 있을까. 자신들에게 쏠리는 의혹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수습책이란 한보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찾는 일이다. 만약 이를 외면하려할 때 정치권은 공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지체없이 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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