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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철시대’(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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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철시대’(지평선)

입력
1997.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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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에 「Iron Age」란 말이 나온다. 흔히 흑철시대로 번역된다. 그리스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를 황금시대(Golden Age) 백은시대(Silver Age) 청동시대(Bronze Age)와 흑철시대 등 4시대로 구분했다. 황금시대는 말 그대로 가장 평화로웠던 때이고 백은시대는 그 보다는 못해도 그런대로 평화가 유지됐다. 청동시대에는 폭력 등이 난무, 말기 증상이 나타나고 흑철시대는 전쟁 등으로 타락과 혼란이 절정에 이른 시기이다.인간이 철을 제련하기 시작한 후 이를 지배하는 자가 나라를 지배한다는 것이 오랜 역사의 흐름이었다. 이 때문에 철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이로 인해 모든 혼란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흑철시대란 이름을 지었는지 모른다.

한보철강 당진제철소 건설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설 연휴에 귀향해 보니 전국이 한보사건으로 용광로속의 쇳물처럼 끓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역시 철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빚은 결과다. 나라를 되찾은 지난 반세기동안 이보다 큰 비리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그럴 만도 하다.

이처럼 나라가 온통 어수선한데도 책임지려는 사람 하나 없다. 모두 나와는 관계가 없고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기 바쁘다. 동사무소를 담보로 수백억원이 대출된 일이나 담당장관이 조단위의 시설비가 투입되는 코렉스공법 도입을 과장전결이라 몰랐다는 사실에 이르면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정부요직에 앉아 있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모두 한보철강에서 나온 쇳가루가 얼굴에 덮여 철면피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책임정치의 실종이다. 문민정부에 가졌던 철석같은 믿음이 무너져 내린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흑철」도 손질하기에 따라 나름대로 빛이 난다. 이를 위해서는 갈고 닦는 수고로움을 거쳐야 한다. 한보철강 사태로 인한 혼란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정·관계를 덮고 있는 녹슨 쇳가루를 선별도 축소도 아닌 철저한 수사로 전부 걷어내야 한다. 대통령의 결단에 달렸다.<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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