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의 혼이 스민 ‘조선학’ 보물창고/국문학논문 씨·성의 차이점 등 흥미로운 내용 많아월북학자라는 이유 때문에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조선학의 대가 대산 홍기문(1903∼92) 선생의 노작을 한데 묶은 「홍기문 조선문화론선집」이 현대실학사에서 나왔다. 서지연구가 김영복씨와 한문학자 정해렴씨가 공동 편역한 이 책은 그동안 계보조차 불확실하던 대산의 학문적 성과를 뒤늦게나마 재평가하고, 우리의 초기 국어학과 조선학의 방향과 깊이를 짐작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대산은 대하소설 「임꺽정」의 작가이자 학자인 벽초 홍명희 선생의 맏아들로 어려서부터 학구적인 가풍에서 자랐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 성장하면서 민족 언어인 조선어문법 연구를 시발로 국어학, 언어학, 음운학, 국문학, 역사학 등으로 학문의 폭을 넓혀 나갔다. 광복 후 북한에서 고전번역에 몰두하다가 생애를 마쳤다.
북한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지만 그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학문이었다. 한글 창제와 반포시기를 처음 규명했고, 한글학의 기초가 되는 「정음발달사」 등의 역저를 남겼다.
이번에 발간된 「조선문화론선집」은 1927년부터 20여년간 발표한 논설이나 논문, 개인적인 글 중에서 지금도 시사하는 점이 큰 글들로 꾸며졌다.
1부 「조선문화론」은 정음사가 간행한 「조선문화총화」를 옮긴 것으로 각종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조선학 관계 글들이다. 지금은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는 씨와 성의 차이점, 마님·마마님·마누라의 공통된 어원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조선역사론」을 다룬 2부와 「국어학과 국문학」의 3부에는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할 귀중한 논문들이 실려 있다.
4부 「서문, 서평, 기행, 기타」를 보면 대산의 가정 환경과 교우관계가 잘 드러난다. 대산이 부친인 벽초를 평가하고, 벽초가 아들에 대해 기술한 글 등에서 부자간의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한다.
대산은 부친의 학문적 깊이를 흠모해 『아버지의 옆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고, 공연히 오는 손님들도 핑계를 대어 쫓기까지 하였다』고 적고 있다. 벽초는 대산의 「조선문법연구」 서문에 『16세 밖에 차이가 나지않는 나와 기문은 형제와 같은 부자이다. 지금 기문의 나이 50줄에 들었고 국문법에 있어 저대로 존재를 주장할 만한 모양이다.(중략). 기문이 20세 이후 세고와 가루에 부대끼고 쪼들리지 않았다면 그 성취가 오늘 보는 바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들의 대견함을 은근히 자랑했다.<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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