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방법원이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서 같은 유형의 사안을 놓고 서로 상반되는 판결을 내려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지법은 한화종합금융이 발행한 사모전환사채의 의결권은 인정해주는 쪽으로 판결을 하고 같은 성격의 미도파 발행 사모사채에 대해서는 이를 부인하는 쪽으로 판결을 했다. 같은 사모전환사채라도 이미 발행된 것은 인정된 반면 발행하려던 것은 제동이 걸려 형평성 논란을 일으키게 됐다.우리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시비를 하거나 법리를 다툴 생각은 없다. 법원의 판결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고 법에 의해서만 시비가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사안도 상급심의 최종 판결을 기다려보는 것이 온당한 태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번 판결이 초래할 경제적 혼란과 부작용이 너무나 심각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며 이같은 모순된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상의 허점에 대해 관련법의 보완 개정이 시급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경영권 공방을 둘러싼 최초의 판결로서 올해부터 본격화하는 인수합병(M&A)의 제도적인 틀과 질서, 관행을 정립하는데 모범이 돼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재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결과는 오히려 혼란을 부채질하고 부작용을 증폭시키는 것이었으며 우리가 법원의 판결과 관계없이 관련 제도와 법률의 보완을 촉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상반된 판결이 나왔다는 점 말고도 이번 판결이 던져준 중대한 문제점의 하나는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는 대주주가 원치 않을 경우 M&A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경영권을 위협받는 대주주는 누구나 즉각 사모사채를 발행해서 지분을 늘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적대적인 M&A는 제도적으로 작동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것은 M&A 제도자체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변칙적인 방법으로 일시에 대주주 지분을 늘리는 사모사채가 공공연하게 합법화한다면 소액주주들의 권익보호나 부실 탈법경영의 견제, 대주주의 전횡과 횡포를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M&A가 갖고 있는 기능이 상실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한보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거대한 재벌 그룹일수록 주주들의 감시견제가 더 필요하며 안팎으로 맞고 있는 우리의 환경이 갈수록 경영의 민주화를 필요로 하고 있는 추세다. 또 다른 측면으로 본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그린메일이나 부당한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국내기업들이 보호를 받아야 할 입장에 있다. 이번 판결은 이 두가지 요구에 각각 정면으로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부당국은 이런 판결이 나오게된 제도적인 문제점과 법률적인 미비점을 하루빨리 찾아내서 보완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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