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일상소재에 진득한 은유의 맛/독특한 여백처리 소품 춘화도 등 눈길한국적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게다가 한국적 작품이라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한국화가」라는 이름이 붙은 작가들에게 한국성, 한국화의 특성이라는 말은 큰 무게로 다가온다. 한국화가들은 실경산수나 문인화와는 구분되는 「오늘의 살아있는」 한국화를 구현하기 위해 언제나 고민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12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관훈동 가나화랑(02―733―4545)에서 마련되는 이왈종전은 현대화한 한국화의 다양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간다.
작가 이왈종(52)씨가 제주 서귀포 부두 근처의 화실에서 2년 동안 그린 대작들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한국화가로서의 고민은 어느 정도의 유명세를 탄 작가들도 피할 수 없는 명제임을 이야기한다.
「생활속의 중도」 연작을 중심으로 마련되는 전시에서 우리는 두가지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첫째, 망망대해에 떠있는 한 점 쪽배 처럼 그의 그림은 유유자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그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텔레비전, 전화기, 바가지 긁는 아내, 딴청하는 사내, 남자의 성기, 못내 무심한 표정의 돌하루방 등 다양한 삶의 오브제들이 보인다.
진득한 은유의 맛은 한국화가 음풍농월의 세계, 여유의 세계만 그리고 있어 그 예술적 치열함이 서양화만 못하다는 생각을 고치게 한다.
둘째, 여백의 문제. 그의 그림에는 여백이 없으되 있다. 한국화의 전통에서 볼 때 그의 그림에는 여백이 없다. 채색의 유무로 여백의 있고 없음을 나눈다면 화면 전체가 채색된 그의 그림에는 여백이 없는 것이다.
작가의 말. 『숲 속에 들어가면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나무로 꽉 차 있어도 시원함이 느껴진다. 여백이란 기가 소통되는 시원한 느낌이다』그래서 이씨는 선에 집착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선. 그래서 그의 그림은 운율이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100호 내외의 대형 작품들은 90년 그가 제주에 터전을 잡은 이래 지속적으로 그려온 현대의 풍속화와 같은 맥락이지만, 젖은 한지에 자국을 낸 뒤 다시 물감을 발라 마티에르 효과를 강하게 낸 작품들이 많다. 낡은 듯, 바랜 듯 옛 벽화들을 보는 느낌이다.
춘화에 관해. 이번에 그는 크기가 손바닥만한 12첩 춘화도를 선보인다. 『그냥 그려본 거죠. 나이 든 이가 탐닉하면 죽게요. 하지만 한 번은 꼭 그려보고 싶은 주제였죠』 공들인 작품보다 춘화첩에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못내 못마땅하지만 그는 혜원 신윤복의 춘화처럼 은근한 맛의 한국춘화 전통은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생활 속의 중도」에서 얼핏얼핏 보이는 성교 장면이나 춘화첩의 그것 역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입장에서 본 중도적 철학이 엿보인다. 색이나 생이나 중도의 입장에서 보면 다 즐겁고, 다 부질없는 뜻이란 얘기일까.
미국인 미술평론가 엘레나 허트니의 서문 읽는 맛도 괜찮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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