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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Body>/자유로운 육 즐기는 체(우리문화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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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자유로운 육 즐기는 체(우리문화 키워드)

입력
1997.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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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영화·미술·광고… 다방면의 소재로 쓰이는 몸/몸은 더이상 노동하는 육체 정신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몸만큼 아름다운 것도 신비하고 진정한 것도 없다/헬스도 하고 칼도 대어보고 섹시하고 아름답게 꾸밈으로써 몸의 독립을 얻지만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강박은 아닌지『머리 나쁜 건 참아도 못생긴 건 용서 못한다』는 조금은 상스러운 우스개. 이 말이 몸에 대한 이 시대의 달라진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철학이 사라진 이 시대. 이제 문화를, 철학을 고민시키는 키워드 중의 하나는 「몸」이다. 더이상 노동하는 육체, 생존하는 육체가 아니라 소비하는 몸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얘기다. 치열하게 고민하는 살(육)이 아니라 즐기는 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몸은 더이상 정신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정신적인 것보다 비속하게 취급받지도 않는다. 「몸의 권리」와 「몸의 독립」, 「몸의 저항」을 이 시대와 문화는 외치고 있다. 몸은 시대 정신과 문화의 주요 텍스트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스위티」같은 외국 영화, 「301, 302」같은 한국 영화에서도 몸은 탐구해야 할 주요 소재다.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누드 크로키에서부터 외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소위 「벗기기 연극」, 몸을 소재로 한 퍼포먼스, 몸을 주제로 한 광고 역시 이제 더 이상 고답적인 예술관으로 인간의 육체를 묶어둘 수 없는 시대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같은 시대상황 자체가 문학의 주요 소재이다.

중세 유럽에서 사악한 것, 신성한 의지를 꺾는 유혹적인 살덩이라고 경계됐던 육체. 「신체는 부모에게 물려 받은 것이므로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유교적 생각에 지배당하던 신체관은 더 이상 설 곳이 없다.

이제 사람들은 「몸만큼 아름다운 것도, 신비한 것도, 진정한 것도 없다」는 신념 아래 몸의 미학을 즐기고 몸을 가꾸기에 뛰어든다. 더 나아가 몸을 만든다. 화장품으로는 부족하다. 실리콘과 메스가 필요하다. 날로 테크닉이 발전하는 성형수술은 자연의 이치와 신의 섭리를 배반한다. 서양인 스타일로 길어진 다리와 짧아진 상체, 국적불명의 머리칼과 피부색. 이제 몸에 관한 한 한국은 이미 「세계화」를 달성했으며, 몸 자체의 원산지는 「다국적」이다.

몸의 조립과 재구성의 궁극적 지향은 대체로 섹시함이다. 「쿨하다」(유행에 맞는다), 「캡이다」(최고이다) 등의 유행어는 바로 「섹시하다」는 것과 통한다. 섹스 어필은 적어도 요즘 젊은이들에 있어 매우 중요한 미덕과 가치관이다. 「잘 생겼다」 「예쁘다」는 말이 남성성과 여성성의 표현이라면 「섹시하다」는 말은 중성적 남녀 공통어이다. 대중매체는 이런 가치를 더욱 확대재생산하고 유포시킨다. 아담한 몸매의 달걀형 미인은 이제 용도폐기됐다. 비디오 시대, 비주얼 문화에서 이소라, 홍진경 같은 모델은 자연스럽다. 「OO부인」 「XX가 예쁜 여자」 등 신체의 특정부위에 대한 지나친 강조 역시 그렇다. 신체 미학은 확실히 달라졌다. 무언가 남과 다르게 「튀어야」하는 것, 그것이 섹시함의 본질이다.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면서 신·구세대 할 것 없이 「몸」에 유난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선진국신드롬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세대들의 몸에 대한 관심은 「건강」에 대한 것이 크다. 반면 신세대들은 보여주는 육체, 섹스를 실행하는 도구로서의 육체, 섹스의 대상으로서의 환상적 가치를 부가시켜주는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따라서 이들에게 노동하는 몸, 고민하는 몸은 의미가 없다. 예전 몸을 강박하던 그 어떤 논리과 도덕적 잣대도 이제 더 이상 몸을 가두는 철학으로 작동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 육체는 진정 자유로운 것일까?

지금 우리는 멋지고 아름답고 섹시함으로써 몸의 자유를 얻고 싶어한다. 몸을 당당하게 외부에 표현함으로써 몸을 해방시키고 몸의 권리를 얻고 싶어 한다. 문화도 그렇다. 외설과 예술, 선정과 미학 사이를 오가며 자유를 외친다.

60년대 미국에서는 브래지어와 거들을 벗어던지는 것으로 여성 해방의지를 표현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달랑 브래지어 하나만 입은 브라탑 패션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하지만 그 자유는 늘씬한 유전자를 받아들인 행운아이거나 막대한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몸을 갖게 된 의지의 한국인들에게만 한정된다. 그들의 육체는 자본주의와 돈이 만들어준 것이다. 이것을 획득할 수 없다면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역의 논리도 성립된다. 대중문화는 몸으로 영역과 표현의 자유를 얻으면서 동시에 소재를 속박한다. 아니 스스로 속박을 당하거나 속박을 노리는 지도 모른다.

몸에 대한 새로운 강박의 브래지어를 꿰어차는 시대. 달라지고 있는 것은 이제 남성들까지, 문화라는 이름의 모든 행위들이 영역에 가릴 것 없이 이 행렬에 동참했다는 사실이다.<박은주 기자>

◎몸의 이미지가 스타성의 관건/관능성 넘어 건강성 중시… 가장 부가가치 높은 ‘상표’

『밑천이라고는 몸 밖에 없다』

산업화 초기 「노동」과 「성」이 유일한 수단인 사람들이 자조적으로 내뱉곤 하던 말이다. 대중문화에서도 그것은 그대로 적용됐다. 노동이 남성의 몸을 상징하듯, 여성의 몸의 가치와 존재 이유는 성적 유희로 나타났다.

60년대 TV가 몸의 상품적 이미지를 얼굴에 고정시키고 있을 때, 영화는 보다 대담하게 성적인 쪽으로 나아갔다. 「자유부인」이 여성의 성적 해방과 봉건적 사회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지만, 「여성의 자유는 몸(성)에서부터」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대중문화에서 여성은 곧 육체가 가진 성적 능력으로 인식됐고, 그것은 70, 80년대 사회적 상황과 논리를 무시한 소위 「호스티스 영화」로 포장됐다.

남성의 경우도 몸은 성과 노동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노동은 곧 전투로 변형된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의 강인한 육체는 그가 전사로 그 힘을 발휘할 때 빛을 발한다.

성의 상품화는 육체의 대담한 노출과 관음주의(엿보기)형식에 의해 위력을 발휘한다. 그 결과 대중문화에서는 「몸=성적 매력」이란 인식이 널리 자리잡았다. 이같은 흐름은 지금도 유효하다. 에로영화나 비디오의 양산과 옷, 자동차, 심지어 어린이 과자CF까지 제품의 성격과 상관 없이 등장하는 미녀들의 성적 행동들은 결국 지금의 대중문화가 어쩌면 육체에 대해 편식을 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촬영중인 영화 「산부인과」 다음 작품으로 「몸」을 계획하고 있는 박철수 감독. 그는 몸의 중요한 이미지인 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몸의 관능성을 표현하지 않고는 상품으로 시각화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 이보다 더 중요한 이미지는 건강성, 강건성으로서의 몸이다. 그것은 에너지로 이미지화하고 정신의 지배논리, 정신 우위의 논리에서 벗어나면서 새롭게 평가받기 시작했다.

여전히 성적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진 않았지만 건강하고 아름다운 남성 육체와, 건강한 여성에 대한 가치 인정. 배우 이정재, 탤런트 차인표, 가수 클론, 탤런트 김혜수의 몸이 가진 주무기는 시각화한 건강미와 강건한 에너지이다. 그것을 하찮게 생각한다면 아마 중성적 이미지의 김지호가 최고 모델이 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슈퍼모델에 대한 선발기준도, 이소라 홍진경에 대한 가치도 달라졌을 것이다.

강건성의 강조는 몸을 상품화하는 시각에도 변화를 주었다. TV는 얼굴 위주에서 몸 전체의 건강미를 강조하는 연출로 바뀌고, 영화는 이정재의 벗은 몸보다 의상과 조화시킨 신체적 균형을 강조한다.

MBC TV제작국의 박종 책임프로듀서는 『90년대 이후 몸 전체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스타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한다. 특히 줄거리보다는 분위기를 강조하는 트렌디 드라마가 선보인 이후 섹시하기보다 「몸이 좋은」 남자 탤런트들이 스타로 부상했다.

이젠 굳이 「성」을 연상시키지 않고도 몸이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문화 상품이 된 셈이다. 아니 상표가 되었다.<이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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