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우의 톰슨멀티미디어사 인수와 관련한 논란을 보면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과 함께 우리 기업이 세계화 추진과정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다른 나라 기업들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부실기업에 우리 기업이 왜 그렇게 강한 집착을 보일까. 그 이면에 지적재산권 문제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톰슨은 필립스에 이은 유럽 제2위의 TV업체로, 「RCA」 「텔레푼켄」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톰슨에 흡수된 미국의 RCA는 TV/VCR에 적용되는 기본특허의 그물망을 지금도 세계 전역에 거미줄처럼 쳐놓고 있다.
RCA는 특허계약 업무에 170여명의 전문가를 대거 투입하여 매년 수억달러의 로열티를 벌어 재정적자를 보전하고 있다. 또한 톰슨은 멀티미디어의 핵심기술인 동화상전문가그룹(MPEG)을 비롯, 수많은 첨단제품에 강력한 특허권을 설정해놓고 핵심특허를 보유한 미국, 일본, 유럽의 9개 특허권자와 함께 패턴트풀(특허권자연합)을 구성해 회원기업 외에는 고액의 특허로열티를 부담토록 하거나 아니면 특허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톰슨은 부채가 160억프랑(2조5,000억원)이나 되는 부실기업으로 기술력과 지적재산권이 없으면 껍데기만 남은 회사다. 최근에는 독일공장의 문을 닫을 정도로 경영이 어렵다.
우리 기업이 톰슨 인수를 위해 그토록 노력하는 것은 후발기업의 과제인 핵심기술과 강력한 지적재산권 확보로 단숨에 정상에 도약하려는 전략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주력제품의 특허로열티를 없앰으로써 제품생산 기술에서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오른 우리 기업은 가장 강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특허분쟁의 장애가 제거되고 막대한 로열티가 줄기만 해도 우리 기업은 가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 로열티를 벌어들이는 단계에 접어들고, RCA 텔레푼켄 톰슨과 같은 세계적 브랜드를 확보하게 되면 국제경쟁력은 크게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이같은 사례에서 우리는 첨단기술과 지적재산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할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지적재산권에 대해 우리의 대응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국가나 기업의 경영을 지력 가치를 높히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제적 안목을 지닌 지적재산권 전문가를 많이 육성해야 한다. 사람을 키우지 않고서는 지력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를 맞이할 수 없다. 기업의 독창적 기술혁신의 결과물들이 지적재산권으로 철저하게 보호되도록 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최근 미국에서는 지적재산 최고경영자(CKO·Chief Knowledge Officer)가 급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지력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세계적 조류들에 눈을 돌려 최근과 같은 한계적 경제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고등기술연구원 지적재산팀장>고등기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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