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수사기밀” 연막 실제론 상당 진척된듯/국민법감정실정법한계정치파장사이 고민도여야 거물급 정치인들이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의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치권에 대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검찰은 아직까지 겉으로는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검찰은 6일에도 정치인 관련 보도에 대해 『확인되지 않았다』거나 『수사기밀』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다만 국민회의 권노갑 의원이 스스로 1억6천만원을 받았다고 시인한 부분만 『법률검토를 하고 있다』며 조사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검찰의 정치권 수사는 실제로는 시시각각 급박하게 진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관계자는 이미 정총회장으로부터 여야 정치인 30여명에게 정기적으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의 돈을 주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전했다. 이들 중엔 대선주자로 꼽히는 여당 「실세」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병국 중수부장도 정치인들의 자금수수에 대해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았다』고는 말할지언정, 『그렇지 않다』거나 『아직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다』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까지의 조사결과 5, 6명이 사법처리 대상으로 분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돈을 받은 정치인의 명단을 대부분 확보하고 형사처벌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로 해석할 수 있다. 수사 관계자들은 이 사건 연루 정치인이 현재 30여명이지만 수사가 본격화하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신한국당 홍인길 의원과 권의원의 혐의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다만 액수가 보도된 7억원, 5억원보다는 적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날 아침 장명선 외환은행장 등 전·현직 은행장 3명을 추가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대출경위 등을 알아보기 위해 이들을 단순한 참고인 자격으로 불렀다고 밝혀 외압여부에 조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시사했다. 정치인들을 사법처리하기 위한 증거확보 차원인 셈이다. 대출압력이 있었는지, 그게 언제였는지, 압력의 내용이 어떠했는지를 캐내 이를 토대로 관련 정치인들을 「압박」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검찰은 이미 구속된 은행장들로부터 외압의 흔적을 상당히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이 이 날 불려온 은행장들중 일부의 대출커미션 수수혐의를 잡고도 처벌하지 않는 조건으로 정치인의 외압사실을 추궁했을 가능성도 있다. 구속된 행장 2명이 비슷한 시기에 똑같이 4억원씩 받았는데 한 푼도 받지 않았다는 게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검찰이 이들에게 혐의를 두지 않은 것은 이같은 해석을 가능케 한다. 검찰은 설연휴에도 설날 당일만 쉬고 수사를 계속한뒤 다음 주부터 정치인들을 본격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1억6천만원을 받았다고 인정한 권의원과 대출 및 인허가과정에 압력을 넣은 정치인들을 우선적으로 소환할 예정이다. 돈을 받은 정치인을 모두 부를지, 일부만 불러 조사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액수가 큰 정치인은 그만큼 대가성의 개연성이 크기 때문에 소환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수사보다도 수사결과 처리가 더 어렵다』고 말해 국민의 법감정과 실정법의 한계, 정치적 파장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때문에 검찰은 정총회장을 추궁하면서도 그의 입에서 이른바 「한보리스트」가 하나씩 튀어나올 때마다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김상철 기자>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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