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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은행장(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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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은행장(사설)

입력
1997.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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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어찌하여 이 모양이 됐는가. 대형금융스캔들이 일어날 때마다 「금융황제」라는 은행장들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수재)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이번 한보철강 비리사태에서만도 신광식 제일, 우찬목 조흥 등 두 현역은행장들이 수재혐의로 구속됐고 장명선 외환, 김시형 산업, 이종연 전 조흥, 이형구 전 산업 등 4명의 전·현직 은행장들이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았다.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이후 도중하차한 은행장은 모두 16명에 이른다.

구속행장의 해임이 확실하므로 그 수는 이미 18명으로 늘어난 셈이다. 은행가에서는 영일 없는 은행장 구속사태 때문에 은행장을 「형무소 이웃」이라고 하는 자조의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은행 등 금융계가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극히 유감스러운 현상이다.

은행은 이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은 엄격한 직업윤리관의 회복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 은행 혼자의 힘만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은행장이 자신의 명줄을 잡고 있는 권력의 압력을 물리치는 것은 은행장의 길을 포기하기 전에는 안되는 것이다. 은행장들이 가장 취약한 때는 연임을 앞둔 때라고 한다. 신임초라 해도 추후의 연임을 의식해서 실세권력의 대출 청탁을 거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은행장들이 줄줄이 중도하차한 것도 결국은 기업과 유착된 정치권력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이것을 수용하고 그 과정에서 관련기업으로부터 대출후 소위 관행화한 대출커미션이나 아니면 다른 뒷돈을 받았다가 스캔들이 터진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은행장들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경·관·금융유착고리의 하나가 됐다가 파국을 맞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패한 권력구조의 속죄양이라 하겠다.

사실 연이어 소환, 구속되는 은행장들을 보고 분노에 앞서 『힘이 없어 당한다』는 연민의 정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은행장의 책임이 면제될 수는 없다. 은행을 부실화시킨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은행은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이 맡긴 예금을 건실하게 운영, 소정의 이익을 나눠주고 기업에 대해서는 설비자금과 운영자금을 적절히 공급하여 기업을 번영케 하여 은행도 살찌우고 나라 경제도 번창케 할 책무가 있는 것이다.

금융은 경제의 혈관이라 한다. 은행장 특히 우리 나라의 은행장은 사실상 은행내에서는 절대 권한을 갖기 때문에 그 책임이 막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권력실세의 부당한 외압에 『노』라고 말한 은행장이 거의 없었다는 것은 사회 전반의 공통된 현상이기는 해도 직업 윤리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0만 금융인들의 지도자인 은행장들은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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