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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나눔의 명절/심우성 공주민속극박물관장(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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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나눔의 명절/심우성 공주민속극박물관장(아침을 열며)

입력
1997.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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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음력 섣달 그믐, 바로 「까치 설」이다.『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누구나 어려서 한 번쯤 불러본 노래이다. 이제는 동요의 한 구절로 겨우 전하는 이 까치 설이 실은 깊은 뜻이 있음을 되새겨보자.

까치 설이 무엇인가를 아는 데는 「까치밥」이라는 것을 먼저 설명하면 도움이 된다. 늦가을 감나무에 매달린 잘 익은 감을 딸 때, 너덧 개를 남겨놓는 관습이 있다. 이것을 까치밥이라 하는데, 실상 까치가 먹는 것은 아니다. 대자연의 고마움을 아는 인간의 아리따운 마음씨일 뿐이다.

바로 이 까치 설인 섣달 그믐에는 다음 날인 설에 못지않게 여러가지 세시풍속이 있었지만 역시 잊혀져 가고 있다. 한 예를 들자. 지난 한 해 동안 보살펴주심에 감사하여 웃어른을 찾아뵙고 절을 올리는 「묵은 세배」가 있다.

「묵은 세배」는 않고 「세배」만 하게 되면 매조지가 없는 사람이라 하여 몹시 흉이 됐었다. 이 묵은 세배 하는 날이 또한 까치 설이었으니 까치를 내세워 삼라만상에 고마운 뜻을 보내자는 속셈이었으리라. 한편 섣달 그믐 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 했던 것도 맑은 정신으로 겸허히 새해를 맞아야 한다는 깨우침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리라.

설은 한 해의 머리이다. 「설날」은 정월 초하루요, 그대로 「설」하면 대보름까지 15일간을 일컫는다. 그래서 세배는 설 전에 마쳐야 한다고 어른들께서 말씀하셨다.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설은 명절 중의 명절이요, 반갑고도 기쁜 날이다. 그런데 옛어른께서는 낯선 날 또는 삼가는 날이라는 뜻으로 「신일」이라 하였으니 오늘처럼 시끌덤벙한 설 풍습을 미리 내다 보셨음이 아닐까.

전통사회에서 설날의 꼭두새벽은 마을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마을굿(또는 당굿)으로 밝았다. 집집마다의 소망을 담은 가장들의 소지에 이어 촌장의 대동소지가 불꽃을 일구며 하늘 멀리 날아가면 뿔뿔이 집으로 돌아가 집안 차례를 올렸으니 공동체가 먼저요, 그 다음이 사사로운 가정의 순서였다.

차례를 지낸 다음 세배를 올리는 것이 순서요, 세찬으로 음복을 한 후에는 원근간에 세배하고, 덕담을 하며 명절음식을 주고 받으니 이를 「반기」라 했다. 사방 한 뼘 가량의 네모진 반기목판에 유과, 전, 과일을 예쁘게 담아 서로 오가는 반기는 음식이 아니라 따사로운 정이었다.

이 좋은 시절에 어찌 놀이가 없을소냐. 아낙들의 널뛰기가 지축을 울리는데, 상대편이 구른 힘을 잽싸게 되받아서 번갈아 치솟기를 쉼없이 계속하니 이기고 지는 겨룸이 아니라 마음 맞추기 놀이였다.

제기 차는 방식도 갖가지가 있지만 동네제기가 으뜸이다. 사내아이 10여명이 둥글게 마주서서 차고 차고 또 차는데, 서양의 경기처럼 받아내기 어렵게 차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받아 차기를 한나절씩 계속하니 이름 그대로 동네방네 사람들 모두가 이웃사촌이 되는 놀이였다.

각설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고향을 찾는 행렬은 줄을 잇고,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으로 떠들썩하지만 과연 「까치 설」과 「묵은 세배」와 반기하고 널 뛰고 제기를 차던 본디의 설 정신은 어디에서 찾아볼까.

아무리 돈만 있으면 편한 세상이라 하지만 조상무덤 돌보기와 제사며 차례를 돈으로 쳐서 남 맡기고, 비행기 타고 더운 나라로 지금 막 해수욕 가는 분들도 이 글을 보았으면 싶다.

창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에서 내년 설은 꼭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지내실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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