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재벌이 당진제철 부조리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보면 한국기업이 왜 국제경쟁력을 뚫을 수 없게 돼 있는가가 훤히 보이는 듯하다. 과학기술에 돈이 투자된 흔적이 도무지 없다는 것이다. 원래 기업은 기술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 한다. 서양의 재벌들이 커 나가는 과정을 보면 작게는 재봉틀 공장에서 크게는 자동차공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정한 기술을 확보한 후 여기에 돈을 끌어당겨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어 재벌이 된다.라이벌 기업도 뭔가 새로운 기술을 갖고 뛰어들면서 상대기업의 도약을 간접적으로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독일 폴크스바겐자동차를 설계했던 페르디난트 포르세는 뒤에 폴크스바겐사를 떠나 자기이름의 포르세자동차회사를 설립했지만 폴크스바겐과 같은 국민차를 만든 것이 아니고 마력을 올리고 속도가 빠른 스포츠카를 생산하는 회사를 만들었던 것이다. 70년대초에 일본차들이 미국에 상륙하던 때도 그런대로 기업경쟁논리가 섰던 것은 당시 미국자동차시장에 소형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창업행태는 새로운 기술을 갖고 라이벌기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같은 기술로 같은 제품을 만들어 기존시장을 쪼개먹는 것을 목표로 출발한다. 기술을 걸고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고 은행, 정치인, 관료를 걸고 투자한다. 과학기술수준에 관계없이 은행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이 있고 정치인, 관료와 끈이 닿으면 무조건 기업을 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기업도 총판매액의 5% 이상을 기술투자에 돌려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창업의 경우는 기술투자가 적어도 10%는 돼야 한다. 거꾸러져 있는 한보의 됨됨을 뜯어보면 이 공장이 새로운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설립되고 있다든지 새로운 과학기술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노동자 임금을 실제지급액의 배로 올려 노동자임금이 높아 사업이 안된다는 주장을 강변하려고만 했다. 한보패망은 과학기술에 투자하는 대신 권력자에 투자하는 기업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역사가 돼야 한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