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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종교 갈등 집안이 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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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종교 갈등 집안이 금간다

입력
199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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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장례식때 처음 불거져나온 갈등/기독교 믿는 아내는 “우상숭배대신 추도예배”/이후 제사까지 거부 동생들과 불화 심해지고/일가친척 함께 하는 단란한 명절·제삿날이 오히려 살얼음판이라니…설을 맞는 김모(58)씨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4년전부터 제사문제로 기독교 신자인 아내와 동생들의 싸움이 거듭됐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우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다. 문제의 발단은 4년전 어머니의 장례식이었다. 맏며느리인 아내가 갑자기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지내겠다고 고집하기 시작했다. 동생들과 친척들은 모두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지만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어머니의 시신을 앞에 두고 벌어진 격론은 점점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결국 김씨가 나서 전통식과 기독교식으로 두번 장례를 지내는 타협안을 내놓아 겨우 사태를 수습했지만 가족들 저마다의 가슴속 앙금은 쉽사리 삭지 않았다.

김씨는 아내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중풍으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6개월 동안이나 성심껏 모시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내를 더 이상 탓하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아내가 기독교에 심취한 것도 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지면서부터였어요. 매일 힘들게 병구완을 하는 것이 안쓰러워 아내의 종교문제에는 전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달 후 아버지 제삿날을 맞아 다시 일이 터졌다. 아내가 『제사는 우상숭배』라며 제사지내기를 거부한 것. 김씨가 사정하다시피 설득했지만 아내는 끝내 제사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동생들과 아내는 제사문제를 놓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아내는 『유교방식의 제사는 미신이며 교리상 용납할 수 없으므로 기독교식 추도예배로 대신하겠다』고 고집했다. 30년간 제사를 지내고 부모님 모신 것만으로도 할 도리는 다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동생들은 『우리집안을 욕보이려 드느냐』며 『제사 모시기가 귀찮아서 핑계삼아 그러는 것 아니냐』고 대들었다.

장례문제로 감정이 상해 있었던 터라 갈등은 심각했다. 남동생들은 분노를 삭이지 못해 욕을 퍼부어 댔고 누나와 여동생들도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아내는 아내대로 『당신들이 지금까지 부모님과 큰집에 해준 것이 뭐 있느냐』고 반박했다. 김씨는 동생들 주장대로 제사를 모시고 싶었지만 30년동안 고생한 아내가 안돼 보여 어느쪽 편도 들 수 없었다.

결국 그날 이후 아내와 동생들은 완전히 등을 돌렸고 1년에 6차례 돌아 오는 제사와 명절때면 집안꼴이 말이 아니게 돼 버렸다. 동생들은 형수를 비난하는 정도가 아니라 『형제의 의를 끊든가 형수를 버리든가 양자택일하라』며 김씨를 몰아 세웠다. 동생들의 성화에 아내는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불안신경증과 우울증, 급기야 신경쇠약 증세까지 보였다. 보다 못한 김씨는 아내를 병원에 데려 갔고 아내는 몇달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김씨는 아내의 상태를 설명하며 동생들을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거역할 수 없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매년 똑같은 갈등을 되풀이했지만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제삿날이면 아들 내외를 시켜 간단하게 음식을 마련, 제사를 지냈지만 아내는 문을 잠그고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동생들도 형수를 완전히 무시했다.

몇차례의 소란이 지나간 지금 겉으로의 갈등은 줄어 들었지만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다. 『이번 설에도 다시 집안싸움이 날까 봐 불안합니다. 동생들과 아내를 보기가 겁나요. 조상님을 모시고 온가족이 단란하게 지내야 할 명절이 오히려 집안싸움하는 날이 되다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합니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정모(67)씨는 85년 노모가 돌아가시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제사문제로 10년 가까이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다. 기독교 신자인 아내가 제사는 절대 모실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 단란하던 집안에 분란이 찾아 왔다. 정씨뿐 아니라 팔순의 아버지와 동생들까지 합세해 아내를 몰아 붙였지만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더욱이 아버지가 심하게 나무라자 『아버님도 모시지 못하겠다』며 반발했다. 매일 부부싸움을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보다 못한 큰 동생이 『내가 제사를 모시겠다』고 자청했고 둘째 동생도 『아버지를 불편한 곳에 내버려 둘 수 없다』며 모셔 갔다. 결국 제사문제때문에 집안이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아내의 「제사 거부」는 그 후에도 여전했다. 제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음식 준비도 전혀 돕지 않았다. 결국 이문제로 걸핏하면 집안이 시끄러웠다.

그러기를 3년. 동생에게 제사를 맡기는 것이 미안하고 자존심 상했던 정씨는 둘째 아들이 결혼하자 제사를 다시 가져 왔다. 둘째 아들이 『제사를 지내면 자손을 빨리 가질 수 있다』고 며느리를 설득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것이 해결은 아니었다. 몇년이 지난 후 다시 문제가 터져 나왔다. 며느리가 『제사를 모셔 봤지만 애도 생기지 않는다』며 『맏이도 아닌 내가 왜 고생하며 제사를 모셔야 하느냐』고 항의하고 나섰다.

정씨는 난감했지만 며느리에게 강요할 수도 없었다. 결국 동생이 다시 제사를 모시게 됐다. 『제사가 천덕꾸러기처럼 이집 저집 돌아다니게 돼 돌아 가신 어머니를 뵐 낯이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아무도 제사 모시길 달가워하지 않더라고요. 장남인 내가 모시질 못하니 남 탓할 일도 아니고요』

그는 맏아들의 결혼을 계기로 동생으로부터 제사를 넘겨 받았다. 가톨릭 신자인 맏며느리는 의외로 제사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지 않아 그럭저럭 제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제사를 다시 모시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이제야 어머님 뵐 면목이 설 것 같아요. 종교문제와 번거로움을 기피하는 각박한 세태로 인해 제사가 점점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 같아요. 주위에도 우리 같은 집들이 꽤 많거든요』<배성규 기자>

◎“딸이라고 제사 못지내라는 법 있나요”/무남독녀 주부 제주역할 척척/성균관서도 “문제될 것 없다”/남편·아들도 적극 도와줘

『여자라고 제사 지내면 안된다는 법 있나요』

서울 서초동에 사는 주부 이명선(48)씨는 아버지 제사를 손수 지내는 특별한 딸이다.

이씨는 대구·경북지역에서 평생 교단을 지키다가 지난해 5월 작고한 이길우씨의 무남독녀. 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 집안에서는 『딸이 제사를 지내는 법은 없으니 양자를 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무성했지만 스스로 제사를 지내겠다고 나섰다.

그는 『아버지가 생전에 딸인 내게 당신 제사를 지내달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양자를 들이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며 『아버지 뜻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제사를 지내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가 제사를 맡아서야 되겠느냐』는 사람들에게는 『여자라고 제사를 못지낼 게 뭐 있느냐』고 오히려 쏘아 붙인다.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는 남편 이효녕(48·한미은행 기업금융팀 차장)씨가 맏상주 노릇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추석때부터는 자신이 제주 역할을 맡았다. 성균관에 문의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회답도 받아 냈다. 분향 강신 초혼 등 남자 제주가 해 오던 제례를 척척 해낸다. 남편 이씨도 아내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며 힘 닿는 데까지 도와 준다.

남편도 6남매의 장남이라 추석이나 설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한꺼번에 양쪽집안의 제사를 지내는 것은 시간·공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머리를 짜내 차례를 나누어 지내는 방안을 고안해 냈다.

추석과 설에는 서울에서 시가댁 차례를 지내고 중양절(음력 9월 9일)과 신정에는 어머니가 계신 대구로 내려가 차례를 지낸다.

그는 『딸도 제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평소에 딸들도 제사에 참여시켜 집안의 제사 법도를 익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젠가 아들에게 외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도록 할 생각이다. 아들이 외할아버지 생전에 사랑을 듬뿍 받았기 때문에 외손봉사의 이유로서는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아들 이성현(22·군복무중)씨도 『외할아버지의 제사를 외손자가 모시는 것이 뭐가 잘못 됐냐』며 『이런 관행이 사회적으로 정착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편도 『평소 장인을 친부모나 다름없이 생각했다』며 아들의 외손봉사 결심이 자랑스럽다는 표정이다.<조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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