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 기여입학제 도입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전국사립대 총장들은 최근 잇따라 모임을 갖고 기여입학제 추진을 결의하는 등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만성적인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교육평등권 위배를 들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고 학부모들의 반발 움직임도 만만치 않아 추진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기여입학제는 10여년 전부터 논란만 빚어왔을뿐 결론을 내리지 못한 해묵은 문제이다. 전문가들의 찬반의견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찬성 입장/권병무 건국대 기획조정처장·경제학/교육여건 질적개선 갈수록 부담/부족한 재원 보충방안 마련 필요 편집자>
교육시장의 개방은 국내외 대학간의 질적 경쟁을 촉발했고 21세기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의 대학정책도 대학으로 하여금 모든 재원을 질적 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사용하도록 권장해 왔다.
대학발전과정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문제점은 바로 재원이 한정돼 있다는 데 있다. 교육·연구환경의 개선을 위한 시설확충, 연구·실험용 기자재 구입, 교수대 학생의 비율을 낮추기 위한 신진교수의 대폭 충원 등은 예산의 팽창을 유발했다. 교육수요자들은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에 상응한 교육·연구여건의 개선은 물론 후생·복지의 개선, 장학금 지급의 증대, 실험실습비의 증액 등을 요구해왔고 연구활동의 세분화와 실험실습의 심화를 요청하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당연히 조직의 팽창, 인건비의 증대 등 대학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예산의 팽창을 가져왔고 국제화, 정보화, 열린교육 등의 교육정책은 대학의 비용부담을 가중시켜 왔다. 더구나 앞으로는 대학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보충, 대체돼야만 대학의 질적 경쟁력이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등록금, 재단전입금, 국고지원 등만으로는 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
경제성장과정에서 세제, 행정, 금융상의 혜택을 받은 기업은 대기업이 되고 대기업은 다시 재벌이 되는 현상이 있었던 반면 학교재단의 수익사업체는 상대적으로 위축돼 더 이상 재단전입금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 됐다. 따라서 법인사업체에 대한 세제상의 지원정책은 법인전입금의 증대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며 교육용, 연구용, 병원용 기자재 구입에 대한 부가가치세의 감면과 기부금의 면세조치, 그리고 경상비와 인건비의 일부를 국고로 지원하는 등의 정책변화가 있어야만 대학의 재정적 어려움을 개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 비추어 대학의 부족한 재원을 메울 수 있는 방안으로 한정된 범위 내에서의 기여입학제의 도입을 고려해볼만 하다. 정원의 제한된 몇%의 범위내에서 정원 외로 입학시켜 학교에도 재정적으로 기여하고 본인도 대학교육을 통하여 전문인력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다만 기여입학제에 따른 세입은 용도의 투명성이 보장돼 장학금, 시설, 기자재 구입, 도서확충 등에만 지출하도록 규정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제도는 사회계층간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입학대상의 학생수가 급감하고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 등록금 인상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학문의 발전과 교육여건의 질적 개선을 위한 비용의 상승은 피할 수 없을 뿐아니라 국고지원이나 재단전입금의 증액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므로 필자의 사견에 의하면 사회의 헌금 또는 기여입학제에 의한 대학재정의 확보가 필요하다.
◎반대 입장/오성숙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현재 입시경쟁 풍토선 시기상조/노력하는 청소년에 좌절감 우려
대학합격자 발표가 한창 진행중인 요즘, 주위에는 온통 대학의 합·불합격을 둘러싸고 웃고 우는 학생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모든 학부모들이 언론의 대학입시 분석보도에 주의를 기울이며 자녀들의 입시전략을 저울질하는 가운데 논술과 수능과외가 위세를 떨치고 심지어 이제 막 젖을 뗀 서너살배기 유아들마저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는 요즘의 세태를 보노라면 새삼 대학입시의 위력을 절감하게 된다. 학벌과 인맥이 뿌리깊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입학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의 장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모두가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온 국민의 촉각이 대학입시에 쏠려 있는 가운데 최근 사립대 총장들이 돈으로 대학입학을 보장하는 기여입학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은 문민정부 이후 두 배 이상으로 뛰어오른 대학등록금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대다수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냉소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기여입학제는 삶의 목표를 대학진학, 일류대 입학으로 설정하고 있는 대다수 청소년들에게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대학진학을 위해 청소년들이 치르고 있는 그 치열한 경쟁과 노력을 보라. 가장 아름다워야 할 청소년기를 반납하고 대학입시를 위해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청소년들에게 기여입학제는 삶의 목표를 뿌리째 흔들리게 만들 수 있다. 그나마 자신의 노력과 성실함을 보장해주는 대학입시가 기여입학제로 오염될 때 받게 되는 심한 박탈감, 좌절감을 기성세대는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물론 대학의 재정상황이 호전되어 대학의 연구실, 도서관, 실험실등 대학여건이 개선된다면, 학생들이 바로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기여입학제는 한 편으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부모와 학생들이 선망하는 서울대마저도 세계 800위권 안에 들지 못한다는 열악한 대학여건을 개선해가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기여입학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서 설득력을 얻고 있음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여입학제는 아직은 좁기만 한 대학문을 뚫으려고 모든 청소년들이 목매달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전적으로 시기상조다.
기여입학제는 치열한 입시경쟁, 일류대 선호현상이 이 땅에서 사라져 일정한 자격을 갖춘 학생들이라면, 원하는 대학에 모두 진학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도래할 때 고려해 봄직하다. 외국에서 무리없이 시행된다고 해서 대학입학의 조건이 외국과는 전혀 다른 오늘의 한국에 기여입학제를 그대로 도입하면 성실하게 노력하는 이 땅의 수많은 청소년들을 좌절시키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
◎85년 교육개혁심의회 공식제기후 논란 계속/올해 등록금 인상억제와 맞물려 다시 불거져/“사학재정난 해소”“교육평등권 위배” 팽팽대립
사립대 총장들의 기여입학제 도입 추진은 최근 정부의 등록금 인상 억제방침과 맞물려 불거졌다. 고려대 홍일식, 국민대 현승일, 숙명여대 이경숙, 홍익대 이면영, 경남대 박재규 총장 등 5명이 지난 달 20일 한승수 재정경제원장관을 방문, 등록금 인상폭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틀후 전국사립대총장협의회(회장 박재규)는 15개대 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임원회의를 열고 기여입학제 도입 적극 추진을 결의했다. 이들은 12일에 전국사립대 총장회의를 갖고 결의문을 채택키로 하는 등 점차 추진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기여입학제 도입은 사립대들이 기회있을 때마다 의욕을 보여온 해묵은 현안이다. 85년 교육개혁심의회가 사학 발전정책의 하나로 공식제기한 이래 꾸준히 논의돼왔으나 번번이 여론에 밀려좌초됐다.
논란의 쟁점은 사학재정난 해소냐, 교육기회 균등이냐로 요약된다. 각 사립대는 대학재정의 70%이상을 학생등록금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세계적 수준의 대학육성은 공염불이라고 주장한다.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중국도 최근 기여입학제를 인정,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원의 2%를 기여입학제를 통해 선발할 경우 1명당 1억원만 기부해도 대학연간 총수입의 25%, 신입생 등록금 총수입의 100% 증대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립대들은 가장 큰 장애물인 사회적 불신 해소를 위해 정원외 특별전형 실시, 기여금 사용 엄격 제한, 공정관리 등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쪽은 계층간 위화감과 사학에 대한 불신감 조성, 교육평등권 위배 등을 문제점으로 들고 있다. 사학의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우리의 현실여건상 시기상조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재단의 수익을 늘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채 기여입학만 고집한다면 대학의 운영난을 학부모의 호주머니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의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기여입학제가 대학입학경쟁이 어느 정도 완화되고 사학의 윤리의식과 자율적 통제능력이 확립된 후에 도입할 수 있는 장기적인 과제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결국 기여입학제의 시행은 이같은 부정적 요소를 어떻게 불식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계의 충분한 논의과정과 함께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게 대다수 교육전문가들의 견해다.<이충재 기자>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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