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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건축가 선호풍조/임석재 이화여대 교수(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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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건축가 선호풍조/임석재 이화여대 교수(1000자 춘추)

입력
1997.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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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외제를 좋아하는 국민으로 소문이 나 있다. 이런 외제 선호풍조는 때로는 도가 지나쳐 코미디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사기사건의 단골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건축계에서도 일어나고 있어 걱정을 자아낸다. 우리 건축주들이 외국 건축가를 좋아하다 못해 맹신하는 풍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올해는 건축설계시장이 완전 개방되는 해이며 이미 몇년 전부터 외국의 유명건축가들이 우리나라의 중요 건물들을 설계하여 왔다. 그런데 이 일에 한국측 협력업체로 참여했던 건축인들의 말에 따르면 우리 건축주들이 외국 건축가들의 말은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그간 건축주들이 한국 건축가들을 불신하고 푸대접해오던 풍토와 비교되면서 건축인들의 걱정과 탄식을 자아내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은 무조건 공사비가 과다책정됐다고 의심하며 사사건건 따지고 들던 건축주들이 외국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은 평당 단가가 3, 4배나 높게 나와도 싱글벙글 좋아하며 친구들한테 자랑까지 한다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한국 건축가들은 공사비 부풀려서 한 밑천 잡으려는 부동산업자 취급 받는 반면, 외국 건축가들은 「위대한 예술가」로 극진히 대접받는 것 같은 인상마저 든다.

물론 한국 건축가들이 이렇게 불신받게 된 데에는 건축가들 자신의 책임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다수의 한국 건축가들은 건축주들의 몰이해와 의심 때문에 정성을 바쳐 일하기가 힘들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

이제 한국 건축가들의 설계능력과 작품성도 많이 향상되어 믿고 일을 맡길만한 때가 되었다. 건물은 향수나 화장품과는 다르다. 외국 건축가의 지나친 선호는 문화종속과 사대주의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자칫 잘못하면 한국 건축가들은 외국 건축가들을 대신해서 관청 상대하는 잡일이나 해주는 하청업자로 전락하기 쉽다. 이제는 한국 건축가들에게도 믿음과 격려를 보내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도와주어야 할 때이다.<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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