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그룹 어음 외엔 할인 거부… 사채시장도 꽁꽁통화당국이 한보사태로 인한 자금시장의 경색을 막기 위해 6조원(4일 현재 5조5,000억원 방출)의 자금방출에 나섰으나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금융기관에 공급된 자금이 자금수요처인 기업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고 금융권에 고여있어 기업자금난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도 아닌 중견기업이 1,000억원대의 어음을 할인받기 위해 사채시장 주변을 전전하고 있을 정도다.
어음할인이 주업무인 종합금융사들은 30대 그룹이 발행한 특A급 어음이 아니면 할인을 사절하고 있다. 한보철강의 부도로 어음할인에 신중해질 수 밖에 없는데다 한보부도후 내로라 하는 중견기업의 자금악화설과 부도설이 끊이지 않아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보수적인 자금운용전략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모 종금사 여신담당자는 『담보도 없이 신용만으로 돈을 빌려주는 종금사들이 요즘처럼 어수선한 때에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종금사들은 한보철강이 발행한 융통어음을 받아 연쇄도산이 우려되는 업종과 기업체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데 촉각을 곤두세우며 웬만한 기업이 발행한 어음은 취급하지 않고 있다.
은행들도 돈을 떼일 염려가 없는 가계대출이나 30대 계열기업등 일부 우량기업에 대해 대출을 늘리면서도 이외의 기업에 대한 대출은 극히 삼가고 있다. 한보부도후 시중금리가 「이상하게도」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것도 통화당국의 자금공급으로 금융기관에 고인 돈이 기업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자금흐름의 왜곡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루머가 나돈 「요주의기업」과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들은 사상최악의 돈가뭄을 겪고 있다.
반면 일부 우량기업들은 은행의 남아도는 돈을 예전보다 싼 금리로 빌려다 쓰고 있다. 자금시장의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 1일 흑자부도를 낸 마이크로코리아사도 시설자금을 단기자금에 의존한데 문제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잔뜩 움츠린 금융기관들이 평소와 달리 자금제공을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설상가상으로 금융기관 차입이 어려워진데다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회사채 지급보증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증권사들이 우량기업을 제외한 대부분 기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기피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보부도후 회사채 지급보증 수수료가 0.5%에서 최고 1.5%까지 올랐다.
금융기관들이 자금운용을 짜게 하고 있는 또다른 이유는 통화당국이 설후에 자금회수에 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들은 통화당국이 「전례없이」 자금을 많이 방출하고 있어 통화공급과잉으로 물가상승이 우려될 경우 자금공급을 줄일 수 밖에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유승호 기자>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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