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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 서비스’ 오토바이맨 안중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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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 서비스’ 오토바이맨 안중열씨

입력
1997.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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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배달하는 ‘도시의 전령사’/종로에서 여의도까지 8분/원하는 시간·장소에 틀림없이 전해주는 ‘해결사’/지름길·빌딩내부 기록한 노트가 특급 노하우/오토바이맨 반년이면 세상세태가 보이는데/중소업체일수록 권위적이고 직급이 낮을수록 불친절하고…/청와대·방송국 못가는 곳 없고/‘룰라’ 김지현 태우고 신나게 달릴수도 있지만 세상에 비친 모습은 ‘노가다’/어엿한 직장인으로 자리매김할 날 꿈꾸며 오늘도 거리를 달린다수술중 기계가 고장났을 때 5분만에 필요한 부품을 배달해 준다면, 일본대사관에서 공항까지 15분만에 여권을 배달한다면, 은행으로 가는 서류가 하나 빠져 부도날 판에 종로3가에서 여의도의 은행까지 8분만에 달려간다면?

그 가치는? 1만원짜리 「퀵 서비스」가 사람과 경제를 살리는 데 한 몫을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오토바이 서비스맨 안중열(38)씨. 그는 시간을 배달하고 공간을 압축한다. 여기에 현대생활의 번거로움, 수고로움까지 해결해 준다. 반대로 현대인은 돈으로 시간과 편리함을 산다. 왜? 시간은 돈이니까.

3일 상오 8시, 그는 종로지사 사무실로 출근했다. 출근하자마자 전화벨이 요란하다. 종로 3가에서 서류를 픽업해 잠실로 배달하라는 본사의 전갈. 25분후 배달을 끝낸 그는 무전을 날린다. 『379, 잠실대기』, 『379, 문정동 OO로 가서 픽업하세요』 이날 「잠수부」(결근한 동료)들이 많아 배달은 평소의 1.5배 정도인 20건이었다.

거리에서 시작해 거리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안씨. 그는 누구보다 빠른 「도시의 해결사」이다. 누구보다 정확한 「시대의 전령사」이다. 그의 오토바이는 콘크리트 빌딩숲과 뒷골목의 온갖 모습들을 포착한다. 그의 눈은 현대인의 복잡한 생리를 읽는다.

4시간 만에 29군데에 배달한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 어느날 하오 6시. 오더는 종로구 적선동에 있는 케이블TV 연합회의 보도자료를 언론사 29곳에 배달하라는 지령이었다. 속전속결의 비결은 실전을 통한 노하우의 축적. 「견습」시절부터 도심의 지름길과 빌딩 내부를 노트에 기록해 왔다. 그의 노트는 지도만으로는 익힐 수 없는 오토바이맨의 학습서이자 고소득의 비결.

오토바이맨 6개월이면 빌딩속 생리가 느껴진다. 중소기업일수록 상사들이 권위적이다. 의자에 기대 앉은 자세에서 부하들을 부르는 호칭까지. 아랫사람들도 상사들을 훨씬 어려워한다. 직급이 낮을수록 불친절하다. 단순 사무직 여직원일수록 퉁명스럽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푼다고 그는 생각한다. 배달하는 물건의 부피가 클수록 불친절하다. 부피가 적을수록 고급업종이라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마다 관상이 있듯이 사무실마다 느낌이 있다. 경비원만 보면 회사의 분위기를 판단할 수 있다. 안내원이 밝고 친절할수록 사무실 분위기 또한 그렇다는 직감은 틀림이 없다. 1,000원, 2,000원 요금을 깎으려는 데도 있다. 그런 회사일수록 불경기에 허덕이는 섬유 의류제품을 취급하는 곳일 때가 많다.

그의 눈에는 자본주의의 세태도 보인다. 부탁하는 쪽과 받는 쪽은 태도부터가 다르다. 배달을 부탁하는 하청업체들은 사정조다. 그들은 급하고 중요한 샘플이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러나 원청업체들은 받는 태도부터 거만하다. 그의 눈에는 빌딩숲이 거대한 먹이사슬로 읽혀진다.

오토바이맨은 생각보다 「힘있는」 직업이다. 못가는 곳이 없다. 출입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방송국과 국회의사당도 방문표 없이 통과할 수 있다. 청와대 비서들의 사무실도 어렵지 않다. 보통사람이라면 꿈에서나 해볼만한 경험도 한다. 누가 룰라 멤버였던 김지현이나 「첫사랑」의 이혜영을 뒤에 태우고 신나게 달려볼 수 있으랴.

물론 모든 고객이 신명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출발부터 시간을 재는 고객들도 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계속 호출로 독촉한다. 그러나 엉뚱한 데 배달 되면 남의 부서 쓰레기통을 뒤져서라도 찾아주는 고객이 있는가 하면, 배달하는 곳마다 커피대접에 속이 쓰린 날도 있다.

오토바이맨은 배달료 이상의 가치를 창출한다. 『반나절 걸리는 서류배달을 일당 5만원을 받는 자기회사 직원이 한다면 2만5,000원이 날아갑니다. 그럴바에야 1만원에 퀵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낫죠』 안씨의 퀵서비스 경제학은 간단하다.

그러나 이들은 그 가치만큼 대접받지 못한다. 11년 전 서울 장안동에서 자동차부품 배달부터 시작한 안씨의 동료 전현식(39)씨. 『많은 고객들이 아직 인간적으로 대하질 않더군요. 하루벌어 사는 「노가다」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토바이맨들은 스스로 자리 찾기에 노력한다. 곧 개인사업자 등록이 나온다.

하루 열서넛 건을 배달해 200만원 이상까지 족히 버는 이들은 복지후생제도를 만들고, 자신들을 위한 보험상품도 있는 직장인으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선거때만 되면 남발되는 교통행정 공약들, 짜증나는 교통지옥, 행정기관들의 경직. 기다림에 지친 시민들에게 오토바이 소리는 반갑다.<유병률 기자>

◎‘도시락에서 사랑까지’ 활짝 핀 배달문화/숨가쁜 현대사회 편의성도 좋지만 사람냄새 사라지는 아쉬움도…

「도시락에서 사랑 배달까지」.

배달시대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배달한다. 발품을 애써 팔지 않아도 세상의 온갖 것을 전화 한 통으로 손에 넣고 보낼 수 있다. 배달 서비스업은 현대 생활이 복잡다단해지는 만큼 덩치가 엄청나게 커졌다. 현대인들은 알게 모르게 배달에 의지하고 익숙해 간다.

「배달」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신문이나 우편물 자장면 등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도심을 바람처럼 가르는 오토바이맨이 우선 떠오른다.

「퀵 서비스」 「스피드 서비스」 등 오토바이 배달서비스업체는 서울에만 300여개. 소속된 「라이더」(흔히 오토바이맨이라 불리는 배달인)만 해도 줄잡아 6,000여명. 라이더의 1일 평균 배달회수는 10건정도. 하루 동안 서울에서만 무려 6만건의 배달거래가 이루어 지는 셈이다. 배달품목은 서류나 샘플 등이 주류이지만 연예인 등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도 「운반」한다. 입시날에는 수험생들도 나른다. 직장이 아닌 일반 가정의 이용률도 30%정도로 생각보다 높다.

「도어 투 도어」를 내건 택배업도 번창 일로. 소규모 택배업의 역사는 오래 되지만 본격적으로 대기업이 뛰어 든 것은 92년. 한진택배가 「소화물 일관수송업」허가를 얻고부터다. 시장 점유율이 25% 가까이 되는 한진택배의 지난 한해 운송료는 350억여원, 주문건수는 870만여건.

우편판매, 통신판매도 폭증하고 있다. 지난해 우체국의 우편주문판매 건수는 113만건에 거래금액은 250억여원. 사업 첫해인 86년에는 연간 거래건수가 고작 1,000여건에 거래금액이 1,100만원이었다. 거래건수로는 무려 1,130배, 금액으로는 2,272배나 커졌다. 85년 사업을 시작한 신세계백화점 통신판매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은 68억원.

케이블 TV 쇼핑채널은 선보인 지 두해 만에 통신배달판매의 총아로 떠올랐다. 하이쇼핑과 삼구쇼핑이 반분하고 있는 쇼핑채널 통신판매 시장규모는 96년의 경우 약 500억원. 하이쇼핑의 경우 매달 평균 10만건의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월 거래 품목이 1,700종 가량 된다.

배달품목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 제목만 일러주면 비디오테이프를 날라주고, 고향의 농산물도 밥상에 올려준다. 꽃집을 찾는 남자가 예전보다 줄었다면 꽃바구니 배달 서비스 때문이다.

도시락도 날라준다. 배달도시락의 원조격인 「미가도시락」은 91년 첫선을 보인 뒤 현재 전국 170개소에 체인점을 갖췄다. 한 체인점당 1일 100여개의 주문을 소화하고 있다. 밤 늦은 시간, 출출함을 채워주는 야식배달도 몇해 전부터 성업중이다.

유형의 것만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가 사랑고백을 대신해 주는 사랑배달 서비스도 나왔다. 사랑뿐인가? 절교선언까지도 「배달」해 버린다.

효율성, 경제성을 따지고 간편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배달은 훌륭한 서비스다. 그러나 배달은 얼굴을 맞대지 않는다. 음성이나 컴퓨터 시스템만으로 완벽하게 거래가 이뤄진다. 몸을 부딪칠 일도 없고, 가격을 놓고 실랑이 할 필요도 없다. 대신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샀을 때 느끼는 쇼핑의 즐거움은 포기해야 한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 경제성, 편의성에 묻혀 사람냄새는 이렇게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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