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싸움… 누가 다칠지 몰라”/가족 사법처리 유보로 회유한듯한보부도사건의 열쇠를 쥔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의 입이 열렸다. 검찰이 4일 이형구 전 산업은행총재 등 전·현직 은행장 3명을 전격 소환한 것도 정총회장의 「자물통」입이 열린 덕분이다.
정총회장의 말 한 마디는 곧 관련자 소환과 사법처리로 이어지는 핵폭탄급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럭비공과 같아 누가 다칠지 아무도 모른다』며 『모든 게 정총회장의 진술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정총회장이 반성문을 쓰듯 「한보리스트」를 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수사관계자들에 따르면 조사자료와 방증을 들이대면 『그 사람들에게도 줬겠죠』라는 식으로 확인해 주는 수준이다. 정치인들에게 돈을 주었다고 하면서도 언제 무슨 명목으로 얼마를 주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병국 중수부장이 이날 『(정총회장 로비와 관련) 정치인 숫자를 이야기할 정도로 확인된 것은 없지만 확인하려고 노력중』이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진술은 점차 구체성을 더해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총회장의 말문이 터진 만큼 이제 시간과의 싸움일 뿐』이라는 수사관의 말이 이를 시사한다.
「자물통」을 열게 한 「열쇠」는 무엇이었을까. 검찰주변에서는 정총회장과 검찰이 모종의 거래를 한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우선 정총회장을 제외한 정씨일가의 사법처리 유보라는 카드로 압박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검찰은 정보근 회장을 소환하지 않은 채 실권이 없는 「바지사장」논리를 내세워 구속대상에서 제외할 가능성을 은연중 내비치고 있다. 정총회장이 강한 집념을 보이는 재산권을 내걸어 수사협조를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중수부장은 이날 『낮은 산은 쉽게 넘을 수 있어도 높은 산은 더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수사는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정총회장은 현 정부의 실세그룹으로 분류되는 정치권인사나 고위공직자의 관련여부는 부인과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고 검찰은 전했다. 과연 검찰이 정총회장의 입에서 어느 선까지 대답을 끌어낼지 주목된다.<이태희 기자>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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