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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올가미’ 불법 카드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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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올가미’ 불법 카드대출

입력
1997.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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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리캉’ 전국 3,000∼4,000곳/고리 선이자 떼고 ‘연체’ 급한불 꺼도 몇번 반복땐 빚 눈덩이/월리 30% 무담보대출도「신용카드 연체대금 당일 대납」

카드대금 200만원을 갚지 못해 밤잠을 설치던 최모(33·여)씨는 지난해 이런 신문광고를 보고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서울 을지로의 「H기획」사무실을 찾아가 카드로 선이자 40만원을 떼고 200만원을 빌려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카드회사가 청구한 240만원을 갚기 위해 또다시 「H기획」을 찾을 수 밖에 없었고 이를 몇차례 반복하자 빚은 어느새 1,330만원으로 늘어나 있었다. 돈을 빌려 주면서 유령가맹점의 허위전표를 사용했던 「H기획」은 곧 사무실마저 어디론가 옮겨 버렸다.

YMCA 시민중계실에 고발접수된 최씨의 사례는 카드대금을 연체한 사람들의 다급한 심정을 이용하는 불법 신용카드 대출, 속칭 「카드 와리캉」의 전형이다. 대출업자의 배후에는 카드할인 도매상, 즉 전주가 있다.

관계당국과 카드회사들은 전국에 3,000∼4,000곳의 불법 대출업소가 단속망을 피해 성업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불법대출 규모도 해마다 늘어 지난해 일시불 및 할부거래 총액 30조원의 20%인 6조원 가량이 불법대출 자금일 것으로 추정됐다.

한 카드회사 관계자는 『한달에도 10여건씩 피해사례가 접수되고 있다』면서 『회사에서 전담반을 구성해 사기단을 쫓고 있으나 이들이 워낙 사무실을 자주 옮기는 데다 사무실을 얻을 때 대개 가짜 주민등록증을 사용하기 때문에 꼬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고가의 전자제품이나 다량의 상품권 구입을 통로로 한 불법대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95년 카드대금 200만원을 빚진 회사원 김모(26·여)씨도 서울의 카드대출업소를 찾아갔다. 김씨는 대출업자가 시키는 대로 카드를 이용해 유명백화점의 상품권 300만원 어치를 구입, 대출업자에게 넘겼다. 업자는 상품권을 중간도매상들에게 85∼88% 가격으로 되팔아 수수료 명목으로 60만원을 뗀 뒤 김양에게 200만원을 주었다. 이렇게 쌓인 김씨의 빚은 800만원이 넘었고 그의 부모가 빚을 얻어 갚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방법은 카드대출과는 달리 당국과 카드사에 추적의 빌미를 주는 허위 가맹점의 전표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 때문에 갈수록 성행하고 있다. 심지어 불법대출업자와 대리점이 결탁해 조직적으로 행하는 예도 있다. 대개 대출업자로부터 물품이나 상품권을 산 도매상은 이를 90∼95%의 가격으로 상품권을 발행한 유통업체에 되판다. 유통업체는 앉은 자리에서 마진을 챙길 수 있어 불법인 줄 알면서도 거래에 응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 대기업계열 카드회사는 수백만원의 상품권을 구입한 뒤 대금을 장기연체한 카드사용자가 이런 경로로 불법대출을 받은 사실을 알아 내고 상품권 발행처인 H유통에 대해 한때 지급정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일명 급전으로 불리는 사채업자의 무담보 소액대출도 카드대금 연체자들을 유혹한다. 주민등록서류와 인감증명을 제출하면 담보없이 돈을 얻어쓸 수 있어 많은 연체자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이용하지만 이자가 월 20∼30%로 높아 돈을 빌린 뒤 3개월만 지나면 빚이 2배로 늘어난다. 이 때문에 법률구조공단과 소비자보호원 등에는 초기에 빚을 갚지못해 패가망신한 채무자의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고 접수되고 있다.<유성식 기자>

◎무자격자 카드발급 벌칙 강화해야/발급제한·연체땐 모든 카드 정지 등/새 행정지침도 처벌따라야 효력

신용카드가 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사용자들의 무분별한 소비와 이를 조장하는 카드회사의 과당경쟁이라 할 수 있다.

재정경제원은 지난해말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카드사용 및 카드회사 업무에 대한 새로운 행정지도 지침을 내 놓았다. 새 지침은 지금까지 6개월안에 연체대금을 갚으면 카드이용에 제약을 받지 않던 것을 4월부터는 3개월 이상만 연체하면 모든 카드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카드남발 방지를 위해 최근 1년간 근로소득이 700만원을 넘거나 종합소득세를 30만원 이상, 재산세 3만원 이상을 낸 사람에 한해 카드를 발급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소비자단체와 학계는 새 지침이 과소비 현상과 과당경쟁 해소에 우선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실업자나 대부분의 대학생 등 「무자격자」의 신용카드 사용이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지침도 분명한 현실적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함께 나오고 있다. 어차피 카드회사간의 회원확보 경쟁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법망을 뚫고 실적을 올리기 위한 온갖 편법이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우선적인 이유이다. 소비자보호원의 김성천 책임연구원은 『이 정도로는 카드회사간의 무한경쟁을 막기는 어렵다』며 『카드회사는 1년 소득에 대한 증빙자료는 얼마든지 조작해 무자격자를 적격자로 만들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자격자에 대한 카드발급을 규제할 벌칙규정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YMCA 시민중계실의 신종원 실장은 『무자격자에게 카드를 발급했을 경우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자격자가 카드대금을 연체하면 카드회사의 책임도 함께 물어 대금의 일부를 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용카드를 이용한 과소비 억제책에 대해서도 신용카드에 대한 사용자들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신용불량자만 양산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도 무성하다.

한국금융연구원 박영철 원장은 『신용카드 이용방법 및 인식의 선진화가 가장 시급하고도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천 연구원도 『과소비는 신용카드의 영향과 기능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다』면서 『학교에서부터 신용사회의 참모습과 신용카드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그동안 신용카드가 적지 않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카드회사와 가입자간의 신용관계를 자꾸만 법으로 규제하려는 발상은 곤란하다』는 것이 카드회사들의 주된 반응이다.<유성식 기자>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자동차·전자제품 등 할부금융사 우후죽순/충동구매 파산가계 늘어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식의 할부문화. 「일단 사놓고 보자」는 마음에 제품을 사들인 뒤 할부금을 갚지 못해 허덕이는 가계가 늘어나고 있다.

또 할부판매가 일반화하면서 95년말부터 자동차나 전자제품 등의 구입대금을 대출해 주는 할부금융사들까지 우후죽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할부판매는 최근들어 가장 흔한 대금지불 방식이 됐다. 고가 내구제에서부터 값싼 가정용품에 이르기까지 적용되지 않는 것이 없다. 기존의 할부판매에서 한 걸음 더 나가 「할부금융을 통한 판매」도 유행한다. 소비자가 자동차, 전자제품, 기타 가정용품 등을 구입할 때 할부금융사가 대금을 대신 지급해 주고 추후에 소비자로부터 분할 회수하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가전사나 자동차사는 할부금융 판매방식을 도입하고 있으며 가구 정수기 컴퓨터 의류 주방용품 등에 대해서도 할부금융이 이뤄지고 있다. 소비재 할부금융사는 주택할부 금융을 제외하고도 20여개. 할부금융을 통한 총 대출액만 2조7,000억원에 달한다. 기존의 할부판매를 대체한 부분이 크지만 소비재 구입에 대한 대출이 손쉬워지면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낸 측면도 있다.

할부판매의 일반화는 그에 따른 부작용도 키우고 있다. 개인의 신용에 기초해 효율적인 소비행위와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애초의 취지와는 달리 충동구매와 과소비, 억지구매를 조장하고 할부금 미납입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쓰지도 않을 가전제품을 사서 처박아 두는가 하면 멀쩡한 자동차를 새차로 바꾸기도 한다. 더구나 물품을 구입할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서 할부로 마구 사들이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정수기 회사 채권관리팀의 한 직원은 『할부로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의 30% 이상은 할부금을 제때 내지못해 독촉이나 고소를 당한다』며 『일부는 연락도 없이 이사하거나 행방불명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할부금융사와 각 제조업체마다 채권관리 직원이 수십명씩 배치돼 할부금 미납자들을 찾으러 다닐 정도다.

(주)현대할부금융 김선태 과장은 『할부로 인한 충동구매가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나 80∼90%는 계획된 구매』라며 『할부금융이 과소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자단체 관계자들은 『할부판매는 충동구매나 과소비로 이어지기 쉽다』며 『할부판매의 폐해를 줄이려면 할부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변화와 함께 판매회사나 할부금융사들이 과도한 실적경쟁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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