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워커힐미술관서「지 천년, 견 오백년」이라고 한다. 종이 위에 그린 그림은 1,000년을 가고 비단 위에 그린 그림은 500년을 간다는 말이다. 우리 전통한지는 예부터 종이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최고로 여길 만큼 품질이 우수하다. 습기적응능력과 물성표현력이 뛰어나면서 은은하고 담백한 미감을 지닌 한지는 70년대 후반부터 한국화뿐 아니라 양화와 입체미술에서도 중요한 재료로 자리잡았다.
한지작가협회(회장 박철)는 90년 「한지는 한국화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과감하게 한지를 조형적 매체로 선택한 서양화가들만의 단체. 박회장을 비롯, 문복철(우석대) 이선원(수원대) 교수와 전광영 함 섭씨 등이 주축이 돼 탄생한 이 모임은 그동안의 작업을 중간결산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4∼28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미술관(02-450-4666)에서 「한지-그 이후전」이란 제목으로 열리는 전시는 협회창립멤버를 비롯, 한영섭 이건희 유재구 이상은 이종한 최창홍씨 등 전체회원 23명이 대표작을 발표하고 또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한지축제」이다.
이들의 작품은 물감(또는 먹)과 붓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화작업과 다르다. 즉 한지제작의 중간단계에서 한지원료를 활용하거나 완성된 한지와 오브제를 결합,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한지작업중 대표적인 방식은 박철 한영섭 최창홍씨의 작품에서 처럼 한지로 탁본을 하는 것. 박씨는 멍석, 아쟁 등 민속생활용구와 악기 뿐 아니라 바이올린 등 서양문물 위에 젖은 한지를 덮어 정교하게 찍어내고 있다.
또 한씨는 수많은 들깨줄기를 깔아놓고 탁본함으로써 추상회화를 연출하고 최씨는 나무위에 한글을 새긴 후 찍어내 신비한 음영의 세계를 보여준다.
고서나 다양한 색감의 한지를 콜라주하거나 오브제로 활용하기도 한다. 전광영 이상은씨의 작품이 그렇다. 특히 20여년간 추상화작업을 해오다 94년부터 한지작업에 매달려온 전씨는 「서양이 박스문화라면 동양은 보자기문화」라는데서 착안, 고서종이로 수백개의 작은 봉지를 제작한다.
이밖에 직접 한지재료에 염료를 섞어 다양한 색감을 표현한 이종한씨의 작품, 컴퓨터디스켓을 오브제로 사용한 이건희씨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9차례의 전시를 열었던 한지작가협회는 회원들에게 우수한 한지를 공급하기 위해 전문제조자 2명을 준회원으로 위촉했다. 지난해 회장으로 추대된 박 철씨는 『상당수 회원들이 한지작업으로 국제미술시장에서 역량을 인정받았다』며 『오는 6월 일본전시를 계기로 해외진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최진환 기자>최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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