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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보다 더 무서운 ‘카드중독증’/신용카드로 인생망친 한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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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보다 더 무서운 ‘카드중독증’/신용카드로 인생망친 한 직장인

입력
1997.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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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없이 쓰는 마력에 빠져 유흥업소·백화점서 흥청망청/월급·저축한 돈 금세 동나고 이 카드로 저 카드 메우기 ‘악순환’/대출·와리캉 손댔다 ‘눈덩이빚’/빚독촉 처음엔 부모 도움으로 막았지만 새 각오도 허사 다시 수렁에/결국 회사 그만두고 도망자 신세로『카드는 잘못 쓰면 마약과 같습니다. 한번 중독되면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어요. 인생이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사용하게 되죠』

신용카드 빚에 쫓겨 도망자가 된 안민수(25·가명)씨는 집도 직장도 없이 떠도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기만 하다. 친구집을 전전하며 숙식을 해결하지만 그나마도 이젠 쉽지 않다. 집을 나온 지 벌써 4달이 넘었지만 돌아갈 날을 기약할 수 없다. 희망이 없는 불안한 삶을 하루하루 이어갈 뿐.

4년전 카드회사 판촉사원의 권유로 별 생각없이 5종의 신용카드를 받아 쥐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공고출신으로 국내 유수의 항공사에서 기술직 사원으로 일하던 건실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손에 쥔 신용카드를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한발 한발 수렁에 빠져 들었다.

『처음에는 한달에 한두번 술값을 계산할 때 카드를 사용했어요. 그러나 몇번 사용하다 보니 겁이 없어지더라고요. 현금을 내지 않으니 돈을 쓴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우선 쓰고 보자는 마음에서 유흥업소는 물론, 백화점이나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카드를 긁고 마구 물건을 사들였습니다』

다달이 청구서에 찍혀 나오는 액수가 100만원이 넘었고 월급이 모두 카드대금으로 날아가 버렸다. 저축해 놓은 돈마저 카드대금으로 빠져 나가 1년만에 바닥이 났다. 안씨 자신도 어이가 없었지만 한번 몸에 밴 소비습관은 좀처럼 떨치기 힘들었다. 현금이 없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쉽게 쓸 수 있는 신용카드의 매력에 이미 중독된 터였다.

94년말 카드대금 150만원을 막기 위해 현금서비스를 받으면서 그의 파멸은 본격화했다. 신용카드 3개로 50만원씩 150만원의 현금을 당겼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달이 넘어가면 카드대금은 수수료와 이자까지 붙어 더 큰 덩어리로 되돌아 와 월급과 다시 다른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은 돈을 부어야 했다.「이 카드에서 돈을 빼 저 카드를 메우는」 악순환이었다.

날이 갈수록 불어나기만 하는 카드빚은 현금서비스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카드대출을 받아야 했고 몇달이 지나자 카드대출 액수는 300만원대로 커졌다. 신용카드를 7개로 늘려 버텨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돈쓰는 버릇이 몸에 밴 그로서는 카드빚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카드사용을 자제할 수 없었다. 연 18%에 달하는 높은 이자 때문에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 났고 마침내 사채업자들한테 불법 카드대출까지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흔히 「카드 와리캉」이라고 부르는 불법 카드대출은 20%가 넘는 선이자를 떼 혹떼러 갔다가 혹붙인 격이 되고 말았다.

95년 7월 카드대금을 막지 못해 한 카드가 연체처리되면서 6개 카드가 잇달아 구멍이 났다. 카드마다 연체금이 300만∼400만원에 달했고 총액은 2,000만원이 넘었다. 집과 회사로 매주 독촉장이 날아 오기 시작했다. 빚독촉에 시달리던 안씨는 고민끝에 부모님께 사정을 털어 놓고 도움을 청했다. 안씨의 부모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충격이 컸지만 어린 아들의 장래를 걱정해 연체분을 막아 주었다. 안씨는 부모님께 『다시는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카드도 모두 부러뜨렸다.

그러나 그의 중독증은 깊었다. 처음 몇달은 잘 견뎌 냈지만 술값을 내기 위해 친구의 신용카드를 빌려 쓰다 보니 또 다시 빚을 지고 말았다. 새로 신용카드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빚을 갚기 위해 다시 현금서비스를 받았지만 「밑돌 빼내 윗돌 괴는 식」이었어요. 한번 결심이 무너지자 걷잡을 수 없었죠. 몇달만에 1,000여만원의 카드빚이 생겼어요. 다시 늪에 빠졌죠』

지난해 7월 다시 카드대금이 연체됐다. 5개 카드에 연체액이 2,000만원을 넘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독촉장이 날아 왔지만 부모님께 또 말할 수는 없었다. 독촉전화 때문에 일을 못할 지경이었고 카드연체 사실이 사내에 알려져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고민끝에 지난해 9월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집을 나왔다.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일단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어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을 찾아 다니며 돈을 구해보려 애썼지만 액수가 커 쉽지 않았다. 카드회사에서 집과 직장은 물론이고 친구들에게까지 전화를 해 갈 곳마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술만 늘었고 거리에서 잠을 자는 일도 잦아졌다. 20대 중반의 한창때에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후회막급이었지만 너무 때가 늦었다.

『카드중독증은 마약보다 무서워요. 멀쩡한 직장인이 도망자가 되는가 하면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경우도 많죠. 제가 아는 20대 초반의 한 직장여성은 1,000만원 가량의 카드빚을 갚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고 도망다니다 결국 강남의 룸살롱에 나가는 신세가 됐어요. 예전의 버릇이 남아선지 요즘도 습관적으로 사용정지된 신용카드를 꺼내는 제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요』<배성규 기자>

◎카드회사 채권회수팀/연체자 쫓는 ‘끈질긴 사냥꾼’/전직 형사 고용 신상정보 빼내… 협박·망신주기 등 총동원

신용카드사의 본점과 지점이 빠짐없이 운영하고 있는 채권팀은 신용카드 사용자가 연체한 돈을 회수하는 것이 업무이다.

신용카드사들이 떠안고 있는 장기부실채권 규모가 지난해말 현재 1조원을 넘어 설 만큼 카드대금 연체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어 이들의 역할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전체직원중 약 25%정도가 채권회수관련 직원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관계자들은 『오히려 연체해결이 회원 확장보다 더 중요해져 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카드회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불입금 연체회원에 대한 빚청산 독촉은 대체로 연체기간에 따라 4단계로 이뤄진다. 우선 연체기간이 2개월 이내일 경우 전화로 납부를 요구하고 3개월째는 『더이상 연체가 계속되면 신용거래의 제약과 법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요지의 최고장을 발송한다. 이어 4개월이 넘으면 연체 회원을 사기혐의로 검찰과 경찰에 고소한다. 카드사의 고소건수는 신용카드 발급시 보증인 제도가 폐지된 92년 이후 급증해 전체 사기고소사건의 10∼3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연체회원 증가는 카드회사가 실적에만 매달린 나머지 신용조사를 거치지 않고 마구잡이로 신용카드를 발급한 당연한 결과이므로 카드회사의 고소 남발은 파렴치한 처사』라는 비판론도 나오고 있다.

연체금 회수작업은 고소 이후에도 끈질기게 계속된다. 고액 연체회원을 채권회수팀 직원이 직접 찾아 나선다. 채권팀은 4개월, 6개월, 1년, 2년 이상 담당 등 연체기간별로 전담반을 구성해 추적에 나서며 다양한 편법과 불법적인 수단이 동원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카드회사가 대개 10여명의 전직 형사들을 채권팀에 두고 이들을 통해 경찰이 확보하고 있는 연체자의 신상정보를 빼내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더욱이 채권팀에는 회수액의 20%를 주는 성과급제가 적용돼 4개월만에 1억원을 번 회수전담사원이 있다는 얘기도 업계에 나돌고 있다. 어쨌든 연체대금 회수실적은 놀랍게도 거의 100% 가깝다.

채권팀은 이 과정에서 연체회원이나 가족들을 찾아가 심한 경우 욕설과 협박을 퍼붓거나 회사까지 찾아가 망신을 준다. 본인의 행방이 묘연할 때는 친지들에게 밤낮 안가리고 전화를 걸거나 수시로 편지를 보내 『있는 곳을 대라』고 채근하기도 한다. 물론 카드회사들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기업계열 카드회사의 한 간부는 『그렇게 하면 기업 이미지가 실추돼 회수한 돈보다 더 큰 무형의 손실을 입기 때문에 절대 무리한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또다른 카드사 채권팀 직원의 얘기는 전혀 달랐다.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연체자의 성격과 처한 상황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웬만한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거나 순진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당장 돈을 내놓지 않으면 사회에서 매장시켜 버리겠다」는 식으로 강하게 나갑니다. 반면 「돈이 없다」며 배짱을 부리는 사람의 경우는 가족과 친구에게 「당신 아들이 곧 감옥에 간다」 「친구가 감옥에 갈 지경이다」는 등의 협박성 편지를 보내 연체자를 설득하게 하거나 대신 돈을 내도록합니다』<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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