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어느 호텔에서 겪은 일이다. 방을 찾아가는데 복도에 불이 꺼져 있었다. 가까스로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고 방문에 열쇠를 꽂으려는데 불은 다시 나갔다. 2분이면 자동으로 나가게 해 놓은 탓이었다.서양학자들이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면 돈은 누가 낼까. 물론 「더치페이」다. 제 먹은 것은 제가 셈한다. 일본학자들하고 몇번 식사하러 간 적이 있는데 그들은 청구서가 나오면 보태기 나누기를 한참해서 균일하게 얼마씩 거둔다. 일본에 가 봤더니 점입가경이었다. 호텔 반찬이라는 게 단추만한 단무지두쪽, 우표만한 김 두쪽, 날계란 하나, 멀건 된장국, 이런 것이 다였던 듯하다. 선진국 국민들의 비용계산은 미세한 부분까지 철저하다.
잘 사는 나라의 경쟁력은 국민 개인의 습관화한 합리적인 일상 생활 속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손님이 낭비할 몇 와트의 전기나 단무지 몇쪽을 아껴서 마련한 돈으로 호텔 시설을 개선하고 식당을 개비한다.
한국인은 호텔 복도의 불을 안끈다. 식당반찬도 푸짐하다. 남이 먹은 밥값도 대신 내준다. 이러는 한국인을 비합리적이라 나무라는 사람도 별로 없다. 남의 밥값은 척척 내면서도 꾸어간 물건이나 돈은 안갚는다. 경제가 어려우니 모두 허리띠를 동여매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외치는 분도 기회만 있으면 골프장이나 스키장으로 내닫는다.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의 외제품 과소비 풍조를 한탄하는 분들도 저마다 무스탕이라든가 뭐라든가 비싼 외제 털가죽 옷을 입고 다닌다.
「남」을 「나」와 편할대로 결합해서 「우리」를 만들고 그것을 편할대로 과시하지만 필요하면 언제나 「나」는 「우리」에서 떨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알맹이는 이기적인 「나」가 되어 뿔뿔이 다 빠져나가고 그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 사회가 아닌가.
몇 와트의 전기나 단무지 몇쪽을 아껴 경쟁력을 키우는 선진국 국민들의 일상 생활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남의 일이었다. 한국의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구조적인 핑계도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땅값은 열배 스무배로 뛰었다. 결함있는 상품을 만들어도 비싼 관세가 그것을 막아 주었다. 줄을 잘 대서 특별융자만 받으면 일류 호텔을 단숨에 지어 떼돈 버는 길도 있었다. 뭣 때문에 그런 째째한 짓을 하랴.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과거 30여년간의 고도성장 기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치열한 경제경쟁의 시대가 되었다. 이중적이고 감정적이고 이기적인 한국적인 「나」가 합리적이고 경쟁력 있는 선진국의 「나」와 똑같은 마당에서 다투지 않으면 안될 처지가 된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경쟁력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이기적인 「나」의 진짜 이익을 위해서는 한국인의 일상이 크게 바뀌어야만 한다. 한국인들은 이제 달라져야 할 때가 되었다.<캐나다 메모리얼대 교수·교육철학>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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