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의 호탕·분방했던 39년 삶「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백호 임제(1549∼1587)는 평안도사로 부임하면서 송도 큰길가 황진이의 무덤을 지나는 길에 이 시조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가 조정의 탄핵을 받았다고 「어우야담」에 전해진다. 그는 「중세의 어둠 속에서 방황했던 인물」이다. 400년도 더 이전의 인물이지만 그 호탕하고 분방한 39년의 길지 않은 생애가 담긴 글은 모든 고전이 그렇듯 시공을 뛰어넘어 다가온다.
꼭 20년의 작업 끝에 간행된 「백호전집」은 「수성지」 등 기존에 전해지던 것 외에 새로이 발굴된 「청등론사」 등 그의 한시와 소설, 시조 모두를 함께 모았다. 신호열 교수가 77년부터 역주 작업을 하다 93년 사망, 작업이 중단됐던 것을 임형택(54) 성균관대 교수가 마무리했다.
백사 이항복은 임제의 문집 서문에서 그의 모습을 『젊을 때는 「공명 따위야 맨손으로 얻을 수 있다」하면서 해학을 일삼고… 마침내 유협을 꺼리고 서사에 몰두해 분방한 기운을 시에다 토해 냈다』고 전하고 있다. 창작과비평사간 전 2권 5만원.<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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