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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Kitsch>(우리문화 키워드:2­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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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우리문화 키워드:2­Ⅰ)

입력
1997.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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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한 고급? 촌스런 세련?/공주병·누더기옷·괜한 복고풍…/천의 얼굴을 한 키치문화/진짜가 아니면서 진짜인 체 거기에서 자기만족을 느낀다/그러나 싸구려 모조품 판치는 실체없는 ‘허위문화’는 아닌지김자옥의 대책없는 공주병이 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는다. 서태지의 신화가 물러간 자리를 영 턱스 클럽의 어딘가 「촌스러운」 듯한 노래가 휩쓴다. 세련된 유명 브랜드 의류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10대들은 구제품 누더기 옷을 찾아 보세 옷가게를 헤맨다.

서로 이질적인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을 한데 묶는 것이 있다.

해답은 「키치(Kitsch)」. 공주병 신드롬에서 그런지(거지) 패션까지, 우리 시대 다양한 문화현상과 복잡다단한 문화심리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이다. 문학, 미술, 방송, 대중음악, 패션에 이르기까지 키치는 번성하고 있다. 키치는 이제 더이상 새롭고 생경한 단어가 아니다. 키치에 대한 책도 나와 있고 「키치」란 이름의 옷가게까지 생겨났다.

키치란 「진짜가 아니면서 진짜인 척하는 모조품과, 이 모조품에서 자기 기만적인 만족감과 위로를 구하려는 심리상태」를 의미하는 독일어에서 나온 개념. 「키치는 행복의 처방전이다」(아브라함 몰르 저 「키치란 무엇인가」·시각과 언어간). 요컨대 김자옥의 공주병은 공주가 아닌 보통 사람이 공주인 척하며 자가당착적인 행복감에 빠지는 키치 심리를 희화한다.

경제의 급성장과 문화의 확장은 문화생산·소비 영역 전반에 걸쳐 키치가 번성할 수 있는 조건과 동력을 제공해 왔다. 「이발소 그림」에서부터 민속촌, 각종 토산품, 무국적의 거대 빌딩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서구문화, 고급예술을 가리지 않고 키치화해왔다.

특히 중산층에서 흔히 보이는 고급 취향, 이국 취향, 복고 취향 등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키치의 다양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서가의 먼지 쌓인 금박 장식 고전물 전집은 읽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집주인의 교양을 과시하거나 문화적 콤플렉스를 보상하는 키치로서 기능한다. 모피의 유행이나 골동품 수집붐 또한 키치의 대중적 확산을 보여준다. 국산 중형승용차 전면을 장식한 벤츠풍 라디에이터 그릴은 그 최신판이다.

모든 상품을 대중들의 하향평준화한 취향과 욕구 수준에 맞추어 대량생산하는 현대 대중사회는 그 자체의 속성상 키치를 전사회적인 규모로 전면화한다. 특히 대중문화의 총아인 스타와 스타 이미지는 키치의 가장 강력한 번식처다. 「서태지 모자」, 「황신혜 머리핀」, 「유동근 와이셔츠」 등. 10대들은 정작 스타 그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물건들을 통해 스타 이미지를 소유하고, 스타에 대한 욕망을 대리충족한다.

예술영화, 재즈, 록 음악 등에 대한 과도한 집착 또한 키치란 개념 없이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예술영화 포스터가 이전 시대에 고급 미술의 키치가 했던 역할을 대체한다.

우리 일상생활 속에 널린 키치와 키치적 상황은 무수한 「키치맨(Kitsch-Man)」을 만들어낸다. 키치맨은 몸짓과 말투, 심지어 내면심리까지도 키치화되어 있는 사람이다. 키치맨은 키치가 아닌 것조차 키치처럼 경험하고 수용하려든다. 그는 고전을 요약한 다이제스트북으로도 지적 충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며, 말구유 탁자에 렘브란트 그림으로 거실을 장식하는 사람이다.

키치의 대량 생산·소비 메커니즘, 그리고 키치맨의 존재. 이제 키치는 키치와 키치 아닌 것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 일상생활을 뒤덮고 있다. 한 외국 학자는 현대 대중소비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키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갈파했다. 우리 모두가 전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키치맨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키치는 창조적으로 문화를 생산하는 대신에 베끼기와 모조품이,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대신에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문화적 표현이자 징후다. 그러나 키치는 그저 싸구려 모조품이나 속물 근성만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키치는 문화적 민주주의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파생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현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키치를 미적·윤리적으로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낮춰 보는 태도는 대중문화 전반의 구조와 흐름을 제대로 살필 수 없게 한다. 키치가 싹트고 꽃핀 문화는 다름 아닌 우리 대중문화의 틀 안에서였기 때문이다.<황동일 기자>

◎낡은 청바지·털스웨터·황신혜 머리핀…/거리 휩쓰는 ‘키치패션’

몇년 전부터 대학가 주변에서 일기 시작한 「캠퍼스 룩」 유행은 우리 젊은이들의 키치 심리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자유와 낭만은 창조적인 사고와 모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비리그 대학의 엠블렘이 새겨진 티셔츠와 청바지, 「이스트팩」 배낭에 있다. MBC 미니시리즈 「애인」이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작년 가을, 이화여대 앞 액세서리 가게마다 똑같은 광고문이 나붙었다. 「황신혜 귀걸이, 머리핀 있음」

키치의 대상은 고급스러운 것, 좋은 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최근 10대들 사이에 유행하는 힙합 패션은 할렘 뒷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불량기 어린 미국흑인 소년들의 좌절이나 사회적 박탈감은 삭제한 채 반항적인 이미지만을 베껴온 것이다. 키치는 이렇듯 제임스 딘의 반항과 할렘가 흑인들의 분노를 등가교환한다.

지난 겨울부터 시작된 구제품의 유행. 할머니들이 입던 낡은 털스웨터, 털모자, 벙어리 장갑, 귀마개, 아버지들이 들던 낡은 가죽서류가방, 짧고 껑충한 바지 등. 많은 부분은 H.O.T 등 대중음악 가수들로부터 시작됐다. 낡았지만 「물을 건너왔기」때문에 뭔가 다르다는 외국의 복고 패션도 사람들을 자극한다. 구치나 루이 비통의 가짜 핸드백을 들고 다니며 고급스런 분위기를 즐기려는 것은 이에 비하면 아주 고전적인 예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 인사동이나 신촌 거리에서 인도나 네팔, 중남미 등지에서 가져온 토산품을 사기 위해 좌판에 몰려드는 사람들에서도 키치 심리는 엿보인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려는 것이다. 서울 홍익대 앞의 한 옷가게 상호명이 「키치」가 되는 「키치적인 상황」이다.

키치패션은 패션 자체보다는 남보다 다르게 보이기 위한, 「튀고」싶어하는 현대 젊은이들의 심리를 반영한다.

황신혜가 꽂은 머리핀은 가짜 보석이 박힌 모조품이지만, 액세서리 가게에서 파는 「황신혜 머리핀」은 진짜라고 한다. 진짜를 베끼는 가짜가 진짜인 상황, 그 자체를 어쩌면 키치라고 부를 수 있을 지도 모른다.<김미경 기자>

◎이발소 그림은 ‘키치의 전형’/촌스러움속에 이상향과 위안 담겨

「가화만사성」, 「어제도 오시더니 오늘도 오셨군요. 내일도 또 오시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어설픈 그림의 한 편에 쓰여진 이런 자구를 보았다면, 설령 이발소에 가본 적이 없다 하더라도 당신은 이미 「이발소 그림」을 감상한 것이다.

「이발소 그림」은 이발소를 그린 것도, 이발소에만 걸려있는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어로 적어도 근세 이후 그림 역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림들을 일컫는 말이다. 때로 「상화」라고도 하지만 「팔리는 그림」이라는 뜻에서 이런 용어를 썼다면 적절치 않다. 「안팔려고」 그리는 작가는 없기 때문이다.

먼지와 파리똥, 그리고 세월에 절어버린 눅눅한 그림이 걸려있던 그런 이발소 풍경은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세운상가나 후미진 명동거리, 변두리 백화점의 계단 매장에서는 이런 류의 그림을 쉽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키치그림이다.

「이발소 그림」은 대개 △밀레의 「만종」 스타일의 모사화 △산, 바다, 호수, 물레방아, 초가 등의 구성 요소를 갖춘 풍경화 △명시의 귀절과 그림을 함께 그려넣은 시화 △이국적 배경에 실재 인물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넣는 인물화 등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싸구려다. 그림의 가격이 그렇고 그 안에 펼쳐지는 그림의 수준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그림에 대한 무조건적 폄하 대신, 문화적 해석 코드를 찾아내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것은 그것이 우리 대중의 바램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낸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발소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부터. 밀려드는 서구의 이미지들은 잃어버린 농경문화에 대한 그리움과 만나 기형적 이상향을 만들어냈다. 「키치적」 조합이다. 우리나라엔 없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화산형 산, 호숫가 집 한 채는 이국풍경이다. 반면 배산임수의 지세, 물레방아와 앞마당에 널어놓은 붉은 고추 등은 전형적인 우리 시골 마을의 풍경. 이 이질적인 두 요소들은 서양화 기법으로 그려졌으나 기본원칙인 원근법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이 이발소 그림들은 우리의 외화벌이 수단이기도 했다. 외국인들은 그 안에서 독특한 한국성을 찾아내기도 했다.

고급 문화가 대중의 오늘과 현재의 모습을 담아내지 않을 때, 대중들은 끊임없는 키치화를 통해 새로운 위안물을 찾아낼 지도 모른다.<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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