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서울에 온 김경호씨 일가중 넷째딸 명순씨가 「진이」라는 옥동자를 출산했다. 북에서 잉태된 아기가 남에서 태어나 최초의 「한반도 아이」가 된 것이다. 그간 대부분의 탈북자가 홀홀단신으로 넘어왔으나 이제는 가족 전체가 우리 사회로 찾아오고 있다.김일성이 사망한 94년을 기점으로 탈북자수가 과거의 4, 5배에 이르는 연 50명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이는 의미있는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에 대해 「선별수용」이냐 「전원수용」이냐는 논란이 있었으며 이들의 국내생활 적응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각 부처가 선별적으로 다루던 탈북자 지원업무를 통일원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통합하기 위하여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탈북주민지원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탈북주민을 원칙적으로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적극적 의지를 담고 있다. 법 시행을 위해서 지난달 23일에는 정부내 16개 부처 관계기관의 협의체인 「북한이탈주민 대책 협의회」가 구성돼 첫 모임을 가졌다. 과거 냉전시대 귀순을 유도하는 정책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포용하는 자세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새로 제정된 법에서 「귀순자」대신 「북한이탈주민」이란 용어를 쓴 것도 그러한 취지이다.
그간 탈북자 수용시설의 능력은 30명 정도에 불과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탈북주민이 사회적응 준비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못하고 바로 사회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일탈행위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도 있었다. 지난해 2월 북한으로 재탈출을 기도하다 붙잡힌 탈북자 김형덕씨의 경우도 그렇다. 귀순후 사회적응에 실패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을 데려오면 환대받을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김형덕씨는 교도소 내에서 공부해 연세대에 합격했으며 지난달 30일 열린 제1차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북한동포돕기위원회 모임에서 학업에 필요한 지원도 약속받았다.
탈북자들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게 하는 교육과 지원이다. 새 법에 따라 이제 보호대상자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상당기간 정부의 특별한 보호를 받게 됐다. 사회적응 능력도 기르고 직업훈련도 받을 수 있는 정착지원 시설을 설치하게 됐다. 전에는 없던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이들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한자나 외래어 그리고 첨단용어에 까막눈인 이들이 세계화와 정보화의 물결에 지레 겁을 먹어 좌절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한의사 자격증을 가졌으면 필요한 절차를 거쳐 이를 활용할 수 있게 해주며, 기술이 없으면 기술을 가르쳐 경쟁사회에 적응하게 해야 한다. 또 탈북자들이 중간에 체류하는 나라들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정부 각 부처가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동독주민들을 보자. 그들은 자유세계의 많은 정보를 접했고 서독과 비교하게 됐으며 서독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그래서 끝내 서독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지금 북한은 외부세계의 정보에 접할 기회가 없다. 그러나 언젠가 그들도 비교하게 되고, 선망하게 되고, 끝내 우리와 합류하게 되지 않을까. 이것을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보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600여명 뿐이지만 언젠가 북한주민 전체의 생활을 우리가 떠맡지 않으면 안되게 될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가. 인도주의나 동포애를 몰라서가 아니다. 희망이나 당위의 차원에서도 아니다. 실로 냉엄한 현실로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과연 우리가 남북통일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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