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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있는 인간/김영현 소설가(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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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있는 인간/김영현 소설가(1000자 춘추)

입력
1997.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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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시대 제주도에 장한철이란 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나이 이십칠세 무렵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다가 그만 폭풍우를 만났다. 갖은 고난과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겨우 유구열도의 어느 무인도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5일만에 지나가는 안남의 상선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구조를 받았으나 다시 본토 상륙 직전에 태풍을 만나 선체와 함께 스물한명의 동행자를 잃고 겨우 여덟명이 살아 남았다. 그 경과를 자세히 기록한 책이 「표해록」이라 하여 지금껏 전해 내려오고 있다.이 책은 그 흥미진진한 모험담과 함께 이방의 풍물, 제주도의 설화, 우연한 로맨스 등으로 조선시대의 문학 가운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보다도 주인공인 젊은 선비 장한철이 죽음과 같은 절망의 상태에서 폭풍우와 싸우며 보이는 인간적인 여유, 의연함, 기지와 유머는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지금의 우리에 비하면 훨씬 더 크고 품격있는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회가 얼마나 성숙한 사회인가를 알아보려면 그 사회 구성원 개인의 능력과 품격이 얼마만큼인지를 살펴보면 된다. 품격있는 개인이 품격있는 사회를 만든다. 그래서 어떤 사회나 그 사회의 질적 수준을 보증하는 규범적인 인간상이 있었고 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중세의 기사도나 부르주아사회의 신사도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높은 질의 시민정신이 필요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조선의 봉건사회는 양반이 지배하던 사회였지만 그 사회대로의 규범이 있었다. 말하자면 「딸깍발이」 선비정신 같은게 그런 것이었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 말을 그저 허풍끼나 허위의식으로만 보기 전에 인간적인 품격을 지키기 위한 어떤 규범이나 철학으로 보는 것은 어떨까. 조선시대의 가난한 지방선비 장한철의 품격과 기개에서 오늘날 너무나 째째하고 왜소해져 버린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요즘의 정치인들을 보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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