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문서’에 음산한 정가/배후설보다 구체성 띠어 의혹 증폭/정략의도 높지만 “그래도 혹시…” 불안정치권이 춤을 추고 있다. 한보 배후설, 연루설 등 온갖 설이 난무하고 있다. 각 정파도 상대 정당의 핵심인사들을 겨냥, 악의적인 루머를 흘리며 설의 양산에 앞장서고 있다. 정치는 없고 음해와 음산한 소문만이 가득한 실정이다.
대표적인 설은 이른바 「한보리스트」이다. 한보의 뇌물을 받은 정계, 관계 인사들의 명단이 20명설, 30명설, 60명설, 심지어 100명설로 포장된 채 국회 주변에 나돌고 있다. 정태수씨가 검찰에 소환된 30일 하오부터는 여야 정치인의 이름과 구체적 혐의사실이 포함된 괴문서까지 나돌았다.
이 괴문서에는 『정태수 돈을 받은 정·관계 인사는 60명』 『한보의 로비자금은 1조5,000억원에 이른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여권 모인사가 은행대출과 제철시설 도입시 리베이트 2,000억원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신한국당의 C의원은 50억원, K의원은 20억원, H의원은 30억∼50억원, J의원은 총선자금을 받았다고 돼 있다. 이밖에 신한국당의 S, K, L, K, S의원의 이름도 적혀 있다. 야당의 경우 국민회의 자민련의 두 지도부 인사가 모두 거론돼 있고 국민회의 K, K, H, S의원, 자민련 L, K의원 등도 리스트에 올라 있다.
또다른 리스트에는 여당 실세 「2+2」의 거액수수설, 야당 3인방의 커넥션설 등이 게재돼 있다. 이 리스트에는 연도, 일자까지 나오며 『한 실세가 시내 L호텔에서 한보측 로비스트를 만났다』는 그럴듯한 얘기도 있다.
루머나 리스트, 설만이 있는 게 아니다. 여야의 당직자나 정보통들도 귀엣말로 언론에 『상당한 인사가 연루돼 있다』 『누구는 문제될 모양이다』라는 식으로 구체적 정보를 흘리고 있다.
문제는 신빙성이다. 떠도는 루머나 설, 한보리스트의 사실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여권 핵심인사나 야권 정보통들이 내놓는 「정보」는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이들은 나름대로 검찰수사나 금융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야가 노골적으로 루머를 주고받으며 공방전을 펼치는 상황에서는 핵심인사들의 정보도 정략적 의도를 담은 허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검찰 고위간부출신인 한 의원은 『지금 수사는 초동단계이다. 수사가 본격화하기 이전에 나온 얘기는 일단 신빙성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자들이 상당수 조사받은 이후인 내주부터 검찰주변에서 나오는 말들은 의미있다』고 말했다.
온갖 설이 나도는데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물타기」로 해석하기도 한다. 과거 여권의 요직을 지낸 한 인사는 『본질은 수서때 추락해야 할 한보가 대선후 현 정권에서 승승장구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권력이 개입하지 않고는 엄청난 규모의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는 또 『천문학적인 대출에 의원들이 영향을 미칠 여지는 거의 없다. 정치권이 문제된다면, 떡값 정도다』라고 분석했다. 여권핵심부로 날아오는 화살을 막기 위해 정치권 연루설이 나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정치권에 나돌고 있는 한보리스트의 진원지가 어디이든, 진실여부가 어떻든간에 이들 설은 국민 의혹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검찰수사는 그 의혹의 수준에 맞춰 상당수 정치인들의 혐의를 밝혀야 한다는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고, 이 부담은 결국 정치권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이영성 기자>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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