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개발오염에 을숙도·영종도·철원 등서 10년새 반으로 줄어/황폐한 자연에 대한 경고철새들이 한국 방문을 주저하고 있다. 풍부한 먹이와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해 오던 국내 주요도래지가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무차별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철새가 전체적으로 절반 가량 줄어 들었다』며 『철새가 우리나라를 기피하는 것은 날로 황폐해지고 있는 사회와 자연에 대한 준엄한 경고』라고 지적했다.
한때 하루 5만마리 이상의 철새가 몰려 들어 국내 최대의 도래지로 유명했던 낙동강 하구 을숙도. 87년 하구둑 건설로 이 일대의 지형과 생태계가 심각하게 변했고 자연히 이곳을 찾던 철새가 감소해 요즘엔 하루 2만마리를 넘지 못하고 있다. 경희대 윤무부 교수는 을숙도를 월동지로 즐겨 찾았던 큰기러기 재두루미 가마우지 등이 10년전에 비해 90% 정도 줄었다고 밝혔다. 『민물과 바닷물의 조화가 깨진데다 상류에 잇달아 공장이 들어서 먹이사슬이 순식간에 흐트러진 때문이지요』
우리나라를 거쳐 가는 철새의 중간 휴식처인 인천 영종도와 충남 아산만 일대에서도 새들의 수난이 계속되고 있다. 영종도의 경우 신공항 건설로 개펄이 대규모로 매립됐고 아산만은 방조제 건설이후 조류의 유입이 막혀 개펄이 썩는 바람에 먹이가 급감한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산림청 조사결과에 따르면 94년 3, 4월 영종도를 찾은 겨울철새는 하루에 27종 1만여마리였으나 지난해에는 18종 5,000여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경작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 먹이가 풍부한 데다 영하 17도의 강추위에도 얼지 않는 저수지 등을 갖춰 천혜의 두루미류 월동지로 평가받는 철원평야. 이곳도 주남저수지와 마찬가지로 보존과 개발론이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조류보호협회 철원지회장을 지낸 주민 김종식(45)씨는 『환경부가 95년 정확한 환경평가와 주민의견 수렴과정을 거치지 않고 주민거주지를 포함한 12만여평을 철새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난 뒤 철새에 대한 주민들의 저항감이 부쩍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93년부터 지난해까지 계속된 철원∼평강 국도 포장공사로 대형차량의 통행이 빈번해진 데다 매년 200여만명의 「안보 관광객」이 몰려드는 바람에 경계심이 유난한 두루미류가 이곳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월말 현재 철원평야 일대에는 두루미 150여마리, 재두루미 260여마리가 머물고 있는데 이는 5년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행주대교와 잠실대교 사이 한강하류의 철새 분포도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산림청 임업연구원 조류연구실 김진한 연구사는 『82∼86년 한강종합개발로 수심이 깊어지고 유속이 빨라지면서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등 부유성 오리가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비오리 흰쭉지 등 잠수성 오리가 상대적으로 늘어났다』며 『그러나 91년을 고비로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부유성 오리가 한강을 다시 찾아온 것은 다른 곳에서 마땅한 서식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김성호 기자>김성호>
◎한국을 찾아오는 희귀조/천연기념물 38종·세계적 보호 13종/황새·두루미·개리·고니 등
우리나라를 찾아 오는 철새들 가운데는 멸종 위기에 처한 세계적 희귀조들도 많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철새는 모두 38종. 이 가운데 두루미 황새 저어새 재두루미 흑두루미 독수리 등 13종은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의 적색자료 목록에 들어있어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새들이다.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는 황새(천연기념물 199호)는 전세계에 2,000∼2,500마리가 서식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제주도, 충남 천수만, 전남 순천만 등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 15마리 내외가 월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격하기가 쉽지않아 발견될 때마다 눈길을 모은다.
예로부터 장수와 평화를 상징하는 길조로 사랑받아 온 두루미(천연기념물 202호)는 현재 지구상에 1,500여마리가 있다. 이중 600여마리는 일본 홋카이도(북해도)지역에 텃새로 서식하고 있다. 국내에는 270여마리가 찾아 온다.
재두루미와 흑두루미도 천연기념물 203호와 228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각각 5,000∼5,700마리, 1만1,000여마리가 있다. 재두루미는 철원평야 한강하구 주남저수지 등지에서 300여마리가 월동하며 흑두루미는 천수만과 한강하구에 300여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리과에 속하는 개리(천연기념물 325호)는 95년 3월 비무장지대 개펄에서 10년만에 발견된 희귀조. 갈색 흰색 주황색이 어우러진 깃털에 긴 귤색다리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철새의 귀족」으로 불린다. 한반도와 일본 대만 등지에 4만∼5만마리가 서식하는데 봄과 가을 이동시 한강과 금강하구에 200∼300마리가 찾아와 쉬다 가곤 한다.
흔히 백조로 불리는 고니(천연기념물 201호)는 큰고니 고니 혹고니 등 세종류가 있다. 큰고니와 고니는 전국 곳곳에서 서식하고 금강하구 천수만 등지에서 무리를 짓고 있는 모습이 흔히 목격된다. 혹고니의 서식지는 동해안 일대에 국한돼 왔으나 최근 취재팀이 서산간척지에서도 최초로 확인했다.
제주도 성산포 등지에 20여마리가 서식하는 저어새(천연기념물 205호)와 철원평야에 20여마리가 있는 독수리(천연기념물 243호) 등도 국내에서는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여름철새 가운데서도 천연기념물 204호 팔색조 등은 그 모습을 찾아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김성호 기자>김성호>
◎도요새는 호주까지 이동
철새는 추위를 피하고 번식과 털갈이 등을 원활히 하기 위해 계절에 따라 이동한다. 오랜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터득한 생존의 지혜다. 봄 가을 우리나라 해안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철새인 뒷부리도요와 붉은어깨도요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호주 남부 해안까지 8,119㎞의 거리를 이동하기도 한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겨울철새는 오리류 고니류 두루미류 등 모두 116종. 4월말∼7월초 러시아 중국 등지의 해안이나 습지의 초지에서 산란한 뒤 10월 중순부터 11월 하순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 온다. 겨울을 보내고는 2월 중순∼3월 중순 번식지인 북쪽땅으로 떠난다. 우리나라보다 따뜻한 「강남」으로 날아가 겨울을 나는 철새들의 경우에는 이동중 국내 습지에 들러 쉬면서 영양을 보충하고 먼길을 다시 날아간다.
한반도를 방문하는 여름철새는 제비 꾀꼬리 뻐꾸기 백로 등 64종으로 추산된다. 매년 4월∼5월 하순 대만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겨울을 나고 먼 바다를 날아 이땅에 찾아온다. 8월 하순까지 번식을 끝내고는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10월을 전후해 「강남」으로 되돌아 간다.
◎윤무부 교수 부자/아버지·아들 함께 10여년째 탐조여행/대학원에 진학 철새연구 이어갈 계획
새박사인 경희대 생물학과 윤무부(55) 교수. 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정감어린 목소리로 전파하는 그는 방송출연과 강연요청이 밀려드는 유명인이다.
이런 그의 오늘은 무엇보다도 새 사랑과 연구에 대한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희귀조가 나타났다는 제보가 들어 오면 만사를 제쳐 놓고 달려가 며칠씩이고 밤을 지새우며 관찰하는 열정이 아직도 식지 않았다.
이런 윤교수의 새탐험에 10여년전부터 그림자같은 동행이 생겼다. 외아들인 종민(22)씨. 경희대 생물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그는 군복무를 마치는 대로 바로 대학원에 진학해 아버지의 새공부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아직 대학생인 그의 새에 관한 지식은 웬만한 전문가를 뺨친다. 모두 아버지 덕분이다. 지난해 강릉에서 국내에서는 한번도 발견되지 않았던 미기록종을 찾아내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윤교수도 『고성능 망원경과 카메라를 둘러 메고 새를 좇아 뛰어다니는 모습이 젊은 시절의 나를 보는 듯하다』고 자랑한다. 외국 관련서적을 힘들게 구해 왔던 윤교수는 아들이 인터넷을 통해 간단히 자료를 모으는 것을 보면 은근히 부러운 생각도 든다.
윤교수는 아들의 새 사랑이 태교에서 시작됐다고 믿고 있다. 『아내가 종민이를 임신했을 때 함께 새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 다녔습니다. 요즘들어 아내는 부자가 카메라 비디오 등에 목돈을 펑펑 쓰고 다닌다고 울상을 지으면서도 「아들이 몇명 더 있었으면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텐데」라고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아버지의 길을 따라 『새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는 윤씨는 『환경오염 때문에 새들이 이땅을 등지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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