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어느 신문에 실린 외신사진을 보고 몹시 기분이 언짢았다. 타이베이 주재 한국대표부 건물 앞길에서 대만의 우익단체 회원들이 우산대로 김영삼 대통령 허수아비를 마구 때리고, 그 아래 계란세례로 뒤범벅이 된 태극기가 깔려있는 장면이었다. 허수아비에는 심한 욕설까지 적혀 있었다. 대만전력공사가 북한에 핵쓰레기를 수출하기로 계약한 데 대한 우리의 항의가 내정간섭이라는 이유에서였다.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시위 방법은 비이성적이다. 이웃나라 원수를 그렇게 저주하고 국가의 상징을 모독하는 행위는 문명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똑같은 행위에 대한 앙갚음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뜨거웠다.
다음날 신문에는 우리 환경운동단체 대표들이 서울주재 대만 특파원들을 불러 리덩후이(이등휘) 총통 화형식을 사과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리총통 허수아비와 청천백일기를 불지른 것은 핵쓰레기 수출을 규탄하는 의사표시의 수단이었지, 결코 당신네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타이완 국민감정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 점을 깊이 사과한다』고 머리까지 숙였다. 사과회견은 핵쓰레기 수출을 저지하기 위해 타이베이에 가 활동하던 우리 단체 대표의 SOS 때문이었다 한다. 리총통 화형식 사진이 그 나라 신문에 보도된 뒤 갑자기 분위기가 살벌해져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을 정도라는 것이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민간단체 대표는 30일 대만 우익단체회원들에 폭행을 당하고 강제 추방당했다. 절제되지 못한 시위행태가 「국민전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좋는 본보기다.
외국과의 갈등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화형식이라는 것을 의식의 한 순서처럼 남발해 왔다. 그 때마다 상대방 국민이 그런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이번 일이 우리의 시위문화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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