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은 많다. 아름다운 것 혹은 서글픈 것일 수도 있고, 놀랍고 괴로운 것일 수도 있다. 순간적일 수도, 오랜 시간을 거쳐 쌓인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은 성숙하며 지혜를 배운다.한국에 살면서 이방인으로서 겪은 경험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음식점에서였다. 첫 여름으로 기억하는데, 처음으로 혼자 음식점에 가게 됐다. 자리에 앉자 우선 무슨 음식을 주문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들 머리를 반쯤 숙인 채 커다란 그릇에 담긴 국수를 숨도 안쉬고 먹고 있었다. 나는 손짓으로 그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을 가져오는 동안 사람들 먹는 것을 잘 보아두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정확히 2분만에 식탁에 놓여진 국수로 차질을 빚었다. 게다가 미끈미끈한 국수(나중에 그것이 냉면임을 알았다)는 제법 수준급이라 자부하던 내 젓가락질을 비웃었다. 집었다 싶으면 도망가고, 겨우 집어 입으로 옮기다보면 어느새 그릇으로 낙하해버리고. 그 때의 당혹감이란….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도 그 많은 국수를 잘 낚아서 위로 배달시키고 자리를 떴다.
『후루루룩』소리 예닐곱 번이면 그릇이 비워지고, 국물 마시고, 물 마시고 음식값 지불하는데 15분이 걸릴까 말까 했다. 그 뒤 다른 음식점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속도는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빨리 빨리」였다.
한국에서 운전을 처음 하던 때의 일이다. 영동대교를 건너는데 뒤에서 경적소리가 요란했다. 그 차를 받은 것도 아니고, 차선위반을 한 것도 아니라 의아해하고 있는데, 택시 한 대가 옆으로 오더니 기사아저씨가 욕을 해댔다. 『XXX! 그렇게 기어갈 거면 집에 가서 낮잠이나 자라!』 규정속도를 지키다가는 큰 봉변 당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경제를 분석하면서 70년대 발전의 원동력을 「빨리 빨리」에서 찾고, 발전의 문제점도 「빨리 빨리」에서 찾는 일견 모순된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제 모두들 「빨리 빨리」정신을 추방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제 겨우 빨리 빨리 밥 먹고, 빨리 빨리 운전하게 됐는데 모든 것이 「천천히」로 돌아가면 다시 습관을 들여야 하나? 또 통일성을 중시하는 한국적 관습에 따라 무슨 일에나 「천천히」정신을 적용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최근 집을 옮기면서 「출근은 이 집에서, 퇴근은 새 집으로」라는 익스프레스이사를 신청했다. 7명이 한 조가 돼 일하는데 약속한 상오 7시반부터 하오 5시까지 완벽히 이삿짐을 꾸리고 푸는 그들의 「빨리 빨리」에 반해버렸다.
「빨리 빨리」가 다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빨리 빨리」 처리할 일은 「천천히」 하고 「천천히」 해야 할 일은 「빨리 빨리」 처리하는데 있다. 공공기관의 서류접수 등은 「빨리 빨리」가 필요하며 건축이나 지하철 시범운행, 문학작품 번역 등은 아름다운 전통인 「은근과 끈기」를 적용해 완벽을 기해야 한다. 「빨리 빨리」와 「천천히」가 뒤바뀌거나, 모든 면에서 「천천히」가 적용된다면 곤란하지 않을까?<한국외대 교수·페루인>한국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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