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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내탓 아니다”(사설)

입력
1997.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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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는 한보철강 부도사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청와대 경제수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 통산부장관 등 유관 경제부처장관들과 은행감독원장, 제일·산은·조흥·외환 등 관련은행장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문제의 핵인 외압에 대해서 관련이 없음을 강조했다. 또한 한보철강과 관련된 대출 등 모든 조처가 정당하고 올바르게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신문과 텔레비전 인터뷰를 통해 이들 고위 책임자들의 주장을 읽고 듣는 국민들은 유감스럽게도 이들 모두가 자기합리화나 변명에 급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사람 한사람이 우리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고위직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결정에 대해 비전을 펴고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이지 못하고 관료체제의 암적 병폐인 책임회피나 전가에 연연하고 있는 것이 심히 유감스럽다. 이러한 자세로 미뤄봐 이번 한보사태의 전모는 규명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사태가 태풍의 눈을 안고 있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큰 이유는 일반적인 금융거래 관행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3조5,000억원 상당의 막대한 대출을 발생시키려면 정치권력의 배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상식적인 유추 위에서 그 정치적 배후가 누구냐는 의혹이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국민적 의혹이 갖는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대통령은 「성역없는 조사」와 「철저한 규명」을 공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관련 은행장들이 『외압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전에 준비된 답변들인 것처럼 들려 설득력이 없다. 일반적으로 전·현직 은행장들은 익명을 요구하는 비공식 대화에서 한보철강 규모의 대출에서는 『외압이 없을 수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개된 인터뷰를 통해 외압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정치·경제·문화풍토에서는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를 갖게 된다. 경제각료 및 전·현직 은행장들은 사실을 밝혀 줄 용의가 없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외압에 대한 부인은 그렇다치고 자신들의 결정에 대한 변명에서도 모순, 불합리, 상호불일치 등이 드러나 오히려 의혹만을 조장해 준다. 담보가 적다고 했다가 충분하다고 정정발표하는가 하면 문제의 코레스공법이 포철·현대 등 민간연구소에서는 경제성이 의문된다고 하는데 경쟁력이 있다고 엇갈린 주장을 하기도 한다. 또한 코레스공법에 대한 기술도입은 과장전결사항인데 담당과장이 보고하지 않아 몰랐다는 전직장관도 있다. 전결이라 해도 1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공법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경제수석은 은행이 도산해도 지원 없다고 하고 있다. 은행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한 발언이라 해도 은행계의 불안이 고조에 달하고 있는 차제에 경제정책의 최고 조정자가 할 말은 아니다. 경제각료와 은행장들은 뭣보다 국민의 신뢰회복이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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