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사이징 통해 질로 승부/18년간 9만명 감원·낡은 설비 대폭 정비/고부가 제품 특화·에너지산업에도 진출미국의 유에스 스틸(US STEEL)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동안 「더 코포레이트(The Coorporate)」로 통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뜻이었다. 유에스 스틸은 미국내 조강생산량의 70%를 차지하며 70년대 초반까지 세계최대 철강기업의 자리를 고수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기업의 등장으로 국제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 반면 비대해진 조직으로 생산성이 떨어졌다. 이 회사의 덩치가 가장 컸던 때는 79년이었다. 직원이 11만2,400명에 조강생산량도 2,970만톤에 달했다. 철강 톤당 노동시간은 9.8시간. 적자가 자그마치 2억9,300만달러나 쌓였다.
이를 최근 상황과 비교해 보면 감량경영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실감할 수 있다. 95년말 직원은 2만800명, 조강생산량은 1,220만톤이었다. 철강 톤당 노동시간은 3.2시간으로 3분의 1로 줄었고 순이익이 3억100만달러를 넘어섰다. 16년동안 무려 9만1,600명의 직원을 감축했다.
세계적 권위를 지닌 철강산업 조사기관인 WSD는 유에스 스틸이 주축인 미국의 철강톤당 평균 제조원가가 지난해 10월 현재 507달러였다고 발표한 바 있다. 487달러인 한국보다는 높지만 일본의 622달러, 독일의 598달러보다 훨씬 저렴하다. 철강 톤당 평균 노동시간도 일본이 4.4시간, 독일은 4.6시간, 한국은 5.2시간이었다.
유에스 스틸은 그러나 지금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 회사 직원은 95년말 보다 1,800여명이 더 줄어 현재 1만9,000명선을 밑돌고 있다. 반면 지난해 조강생산량은 1,260만톤으로 95년보다 40만톤 늘어났다. 96년 3·4분기 경영실적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9월까지 1억3,100만달러의 순이익을 보았다.
유에스 스틸은 미국시장의 25%까지 잠식한 수입철강재와의 치열한 경쟁으로 밀리기만 하던 80년대초부터 대대적인 사업구조 조정작업을 벌였다. 우선 82년 미국내 17위 석유회사였던 마라톤 오일을 인수하며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가레트 헐리(48) 합작기업담당이사는 『철강산업은 경기변동과 순환을 같이 하기 때문에 불황 때는 견디기 어렵다. 이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라톤 오일을 인수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대신 시멘트, 엔지니어링 부문 등 기존의 많은 자산을 팔아나갔다. 철강부문의 낡은 설비는 과감히 폐쇄하고 생산품목도 고급강과 특수강으로 특화했다. 전세계 모든 수요자를 대상으로 철강재를 공급한다는 「양」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부가가치가 높은 품목만 생산, 「질」로 승부키로 했다. 헐리 이사는 『82년 10개에 달했던 제철소가 지금은 게리, 펜실베이니아주의 몬밸리, 앨라배마주의 페어필드 등 3개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제철소를 현대화하는 데만 80년 이후 80억달러를 투입했다.
유에스 스틸은 86년 텍사스 오일 & 가스를 인수, 에너지부문이 철강부문을 능가하자 이름을 USX로 바꾸고 유에스 스틸, 마라톤, 델 하이 등 3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다. 어느 부문이 미래를 주도할 지 몰라 이름끝에 「X」를 붙였지만 유에스는 그대로 둘만큼 철강에 대한 자부심은 살아있다.
내부적으로도 86년 크나큰 파동을 겪었다. 임금인하에 반발한 노조가 86년 중반부터 이듬해 1월까지 미국 철강업 사상 최장기파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회사는 파업때문에 파산일보직전까지 몰렸었다. 헐리 이사는 『이 파업은 노사 모두에게 과거의 관행을 버리고 거듭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주었다』고 말했다. 「세계최대」라는 허세와 과거에만 매달린다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교훈이 그것이다.<피츠버그(펜실베이니아주)=이종수 특파원>피츠버그(펜실베이니아주)=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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