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1월의 서울과 97년 1월의 서울은 너무도 똑같은 현안을 놓고 몸살을 앓고 있다. 91년에는 서울시가 외압을 받아 수서택지개발지구의 땅을 한보에 특혜분양했다는 이른바 수서사건으로, 지금은 은행들이 금고문을 활짝 열어 한보철강에 5조원이란 천문학적 금액을 내주었다는 대출의혹이 온 장안을 뒤집어놓고 있다. 의혹의 주역은 그때나 지금이나 「로비의 귀재」로 불리는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이고, 정씨에게 특혜를 주도록 압력을 가한 배후세력으론 고위관료 정치인 심지어 권력고위층까지 거론되고 있는 점이 크게 다르지 않다.정씨가 안타깝다. 수서사건으로 정경유착의 쓴맛을 그렇게 보고도, 지난해에는 다시 비자금사건으로 모진 수모를 당하고도 왜 그는 달라지지 않은 것일까. 그러나 6년이란 세월동안 달라지지 않은 것은 정씨뿐만 아니라 금권이 권력과 손을 잡으면 안되는 일이 없는 우리사회의 정경유착구조라 해야 보다 정확할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개혁과 사정의 구호가 끊임없이 터지면서 외형상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지만 비리구조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번 대출의혹과 관련, 금융계에서는 「정치금융」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과거에는 정부가 금융기관들을 산하부서처럼 마음대로 주무르는 「관치금융」이었으나 금융자율화로 인해 정부의 노골적인 지시와 개입이 약해졌다. 대신 정치권 실세들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은행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금융계에서는 은행장인사가 있을 때마다 결정적 역할을 한 정치권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떠돌아다니곤 했다.
수서사건 진행과정이 이번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당시에는 일부 서울시 간부가 특혜압력을 끝까지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특혜를 무산시켰다는 사실이다. 3∼4년에 걸쳐 수조원이 대출된 이번 사건에서는 이런 「양심의 소리」조차 아직 듣지 못해 더욱 안타까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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