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협력으로 경쟁력 회복/3사 경영·연구진 기술·정보교류도 활발 디트로이트에 발을 딛는 순간 도시가 너무 쇠락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스리의 본고장은 굽고 패여있는 도로 주변에 슬럼가가 어우러져 있다. 80년대 이후 일본 자동차에 밀려 미국 자동차 공업이 불황에 빠져 있었던 10여년이 도시를 이토록 폐허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음산한 거리를 빠져나와 다운타운에 이르면 그곳엔 재개발이 한창이다. 디트로이트강 주변에 73층의 호텔과 쇼핑몰을 연결하는 르네상스 센터는 90년대 들어 찾아온 미국 자동차공업의 르네상스를 웅변하고 있다.
80년대말 한때 68.9%까지 떨어졌던 빅스리의 미국내 시장점유율(승용차 기준)은 90년대 들어 상승하기 시작, 96년에는 82.6%를 기록했다. 한때 꺼져가던 미국 자동차의 엔진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것이다.
디트로이트의 중흥을 가져온 요인은 자동차메이커들의 대규모 인원정리, 적자 라인 폐쇄, 신형차 개발 등을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회사와 노조가 공동운명체임을 인식하게 됐다는 점이다.
포드자동차 본사 뒤 수풀 사이엔 아담한 건물 한채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 자동차노련(UAW) 포드지부다. 음산한 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초현대식 건물을 갖고 있을 정도로 자동차 노조는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막강한 UAW 포드지부는 근로자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근로자의 이익을 동일시하는 안목을 갖고 있다.
지난해 9월17일 UAW와 포드자동차는 중요한 노동협약을 체결했다. 회사측은 UAW 소속 근로자의 95%에 대한 직업 안정을 보장했고 노조측은 조립공장과 부품공장 근로자의 임금격차를 인정했다. 더이상 과격한 인원 정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회사측의 양보사항이고, 노조도 더싼 부품을 외부에 발주하는 것보다는 부품공장에 낮은 임금의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양보한 것이다. 차등 임금을 인정하는 것은 노조로서 큰 양보였다. UAW가 포드와 우호적인 타협을 맺은 것은 불황을 거치면서 회사의 경쟁력 회복이 곧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포드의 멜 스티븐스 투자담당이사는 『80년대 불황기를 거치면서 포드는 생산원가를 줄이거나 업무 규칙을 수정할 때마다 노조의 도움을 요청했다』면서 『노조는 회사의 입장을 이해했기 때문에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80년대 초 14개 공장을 폐쇄시킬때도 노조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포드자동차의 노사관계에서 보듯 미국의 노동운동은 80년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경쟁력 회복이 고용안정과 임금 상승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해 10월 25일 미국 전국노동조직인 AFL―CIO의 존 스위니 회장이 뉴욕의 한 모임에서 한 발언은 이같은 인식의 전환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기존의 파이를 나눠 먹는 것이 아니라 나눠 먹을 파이를 키우는데 협력하겠다』면서 『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근로자의 임금인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노동운동을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시장을 일본에 내준 경험은 빅스리로 하여금 서로 치열한 경쟁보다는 협조하는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93년부터 GM의 잭 스미스, 포드의 알렉스 트로트맨, 크라이슬러의 로버트 이튼 회장은 한달에 한번씩 저녁을 함께 한다. 공정거래법에 어긋나는 가격 담합을 제외하고 온갖 얘기와 정보가 이 자리에서 오간다. 전에는 없던 일이다.
세 회사의 연구소 책임자들도 매달 한번씩 저녁에 만나 서로의 기술정보를 교환한다. 세 연구소는 나아가 「US카」라는 컨소시엄을 만들어 연간 3억 달러를 들여 전기자동차 배터리, 자동차 경량화 소재 등을 공동개발하고 있다.
일본에 밀려 자동차 생산에서도 2위국으로 전락했던 80년대의 뼈아픈 기억은 GM의 새턴, 포드의 토러스, 크라이슬러의 덧지 등 신형 베스트셀러카를 개발하는 원동력이 됐다. 아울러 이 경험은 회사와 노조, 자동차메이커들 사이의 관계를 경쟁과 대립에서 협조와 이해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디트로이트(미시간주)=김인영 특파원>디트로이트(미시간주)=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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