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만한 것 몇개 챙기면 ‘큰돈’/그러나 섣불리 믿다 낭패 십상/정보맨끼리 모여 ‘클럽’ 결성/때론 루머진원지 의심받기도 증시 주변에는 온갖 루머가 나돌아 이를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루머가 돌면 일단은 「혹시나 사실이면」하는 마음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악성 루머의 폐해도 크다. 증권당국은 수시로 악성 루머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지만 진원지를 알아내기는 어렵다.
D증권 투자분석팀 L과장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증시주변에 떠도는 루머가 때로는 훌륭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초 S전기가 매연저감장치 개발에 착수했다는 루머를 접한 뒤 내사에 들어 갔어요. 당시 그 회사 주식 가격이 1만 5,000원선이었는데 내사 결과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해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지요. 결국 루머는 사실로 확인됐고 주가는 무려 10만원대로 올라 가더군요. 정보맨으로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 부도설을 재빨리 포착해 주식을 팔아 손해를 면한 일도 있지요. 루머 때문에 증권감독원의 조사를 받은 적도 있고 역정보를 믿었다가 낭패를 본 일도 있지만 증시루머 가운데 쓸만한 것 몇개만 챙겨도 큰 수확이라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사실로 드러나면 이를 근거로 투자한 투자자들은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어 루머는 정보와의 구별이 불분명한 상태로 퍼져 나간다. 증시 주변에 주로 나도는 루머는 부도설, 세무조사설, 사정설, 금융사고설, 기업합병설 등이다. 올들어서도 「여권의 대선주자가 A로 확정됐다」 「여권의 C와 P가 손잡고 P를 밀기로 했다」 「은행주에 대선자금이 유입됐다」 「A기업과 B기업이 합병한다」 「S기업이 부도위기다」 「곧 증시부양책이 나온다」 등의 그럴듯한 루머가 돌았다.
한때는 김일성 사망설, 화폐개혁설, 유명인 와병설 등이 느닷없이 튀어 나오기도 했다. 이런 루머가 나돌 때마다 주가도 큰폭으로 등락하고 장세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 어떤 루머는 상당한 논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어 일반투자자들을 현혹시킨다. 따라서 기업의 정보분석팀은 「악성루머」 「역정보」 등을 걸러 내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증시주변에는 각 기업의 정보 담당자, 주요 정치권 인사의 측근, 기관원 등 정보맨들이 우글거린다. 이들끼리 정보를 서로 교환하기 위한 정기적인 모임도 여럿 있다. 이른바 정보맨 클럽이다. 정보맨 클럽 가운데는 각급 기관의 고위 정보맨들이 모여 수준 높은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있다. 또 유료 증권정보지도 다수 있고 음성 증권정보 서비스도 수십개 개설돼 있다. 정보맨이나 이들의 모임이 루머와 역정보의 진원지로 의심받기도 한다.
증권회사에는 정보분석팀이 공식 기구로 활동하고 있고 일반 기업에도 정보관련 부서가 있다. 30여개의 증권사는 각각 4∼6명 정도의 정보맨을 두고 있고 은행과 기업체의 정보맨도 업계 동향과 재계 거물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추적하고 있다. 증권거래소 루머단속반은 이들 모두를 감시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일단 루머에 「날개가 달리면」 증권사 단말기, 관련 직원의 입, 증권정보지 등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간다. 악성 루머의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엄청난 상처를 입고 쓰러진 기업이나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명예가 실추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조재우 기자>조재우 기자>
◎“대선 2∼4개월전 주가 뜬다”/7∼8개월전 바닥세때 정치자금 집중 유입/‘심리적 요인’ 반론도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는 주가가 선거 7, 8개월 전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바닥장세를 보이고 이때 선거자금이 흘러 들어온다. 이후 증시부양책 등이 발표돼 선거 2∼4개월전 주가가 뜨는 식으로 정치자금 「뻥튀기」가 이뤄진다』
증권가에는 오래전부터 이런 설이 있어 왔다. 연말에 대선이 있는 올해에도 이런 설을 적용하면 이미 바닥을 때렸다고들 하는 증시의 본격적인 회복은 하반기 들어서야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D증권 투자분석부 J팀장은 『돈에 꼬리표가 붙어 있지 않아 정치자금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87년과 92년 대통령선거 때 선거자금으로 보이는 뭉칫돈이 증시에 유입됐다가 빠져나간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13·14대 대통령 선거를 전후한 시기의 주가지수 변화를 살펴 보면 그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87년 1월에는 증시가 종합주가지수 260포인트대에서 문을 열었다. 400대까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던 주가지수는 4, 5월부터 350∼380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대선 약 4개월전인 8월중순 500대로 뛰어 올랐다. 이후 종합주가지수는 470∼520대를 오르내렸고 선거후 다시 상승세를 시작했다.
92년의 경우 1월말 종합주가지수 680.51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던 주가는 2월8일 연중 최고치(691)를 정점으로 하락을 거듭해 대선 4개월전인 8월21일 459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8월24일 증시부양책이 발표된 후 주가가 뜨기 시작해 선거 2개월전인 10월말에는 주가지수가 615를 기록했다. 한동안 620∼690의 보합세를 보이던 주가지수는 대선후 87년 선거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상승곡선을 그렸다.
결론적으로 주가는 선거 7, 8개월전부터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가 2∼4개월전부터 상승세를 탄다. 증권가에서는 선거 7, 8개월전에 정치권에서 자금이 들어왔다가 2∼4개월전에 빠져나가는 것이라는 추정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선거자금 수요가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선거를 전후한 주가변동은 정국불안이나 정책변화에 대한 우려 등이 투자심리를 바꾼 결과이지 주식시장 규모로 보아 정치자금이 장세를 좌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동서경제연구소 유시왕 소장은 『우리나라의 선거는 경제상황에 단기적 변화를 일으켜 단기 주가 흐름에 영향을 줄 뿐 기본 추세를 바꾸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이진동 기자>이진동 기자>
◎주식시장의 꽃 펀드매니저/한순간의 판단에 수천억 좌지우지/동물적 감각 40세 넘으면 ‘퇴기’/‘수학능력’ 이공계출신도 몰려
주식시장의 꽃은 역시 펀드 매니저들이다. 펀드 매니저란 회사의 자금을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해 매매차익을 올리는 첨단 직종이다. 사운을 양어깨에 걸머쥔 엘리트들이다. 수천억원을 주무르며 순간 순간의 승부에서 살아 남아야 하므로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하루종일 증시 생각만 한다.
대한투자신탁 주식운영부의 펀드 매니저 김기환(35)씨. 서울대 경제학과와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89년 1월 입사한 그는 2년째 자금운영을 하고 있다. 95년에는 사내 최우수 펀드 매니저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타이틀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움직이는 돈은 2,500억원에 이른다. 액수가 크다 보니 하루 100억원 이상을 챙기기도 하고 날리기도 한다. 펀드 매니저가 된 이후 색깔에 기분이 좌우되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빨간 색은 좋고 녹색은 싫다. 주가가 오를 때는 빨간 불이 켜지고 주가가 빠질 때는 녹색 불이 켜지는 객장 전광판을 지켜 보다가 생긴 버릇이다. 몸을 죄어 오는 스트레스가 가족에게까지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는 정말 괴롭다. 종교가 없으면 견디기 어려운 생활이다. 장이 좋지 않을 때는 사지도 않고 팔지도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
펀드 매니저는 순간의 판단력에 의존해야 하므로 동물적 감각이 중요하다. 때문에 40대가 되면 이내 「퇴기」 소리를 듣는다. 최근에는 환율과 금리 변동 등 해외금융시장의 움직임이 복잡해져 수학적인 능력과 컴퓨터 조작능력 등이 요구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경영학이나 경제학과 출신들의 전유물이던 펀드 매니저 직종에 이공계 출신들이 몰려들고 있다. 냉전이 끝나면서 일자리가 마땅찮아 진 핵물리학자들도 진출하고 있다.
증권사 일선 직원들은 늘 펀드 매니저가 되는 꿈을 안고 살아 가지만 실적이 나쁘면 한 순간에 다른 일자리로 옮겨지는 가시방석이기도 하다. 펀드 매니저에게는 파산선고나 마찬가지다. 처절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 남기 위한 고달픈 삶이지만 묘한 쾌감도 있다. 한 펀드 매니저는 「월척을 올린 낚시꾼의 기쁨」을 환기하면서 『한번 맛보면 떨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조재우 기자>조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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