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고전중 소설 ‘아버지’ 히트/“명퇴바람에 혼자 덕본 것같아 아버지들께 죄송” 문학전문출판사인 문이당 임성규(46) 사장은 「명퇴한파」가 몰아친 지난해 남들과 달리 「고개 숙인 아버지」의 덕을 톡톡히 봤다.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 증권회사에서 10여년 근무하다 사표를 던지고 출판계에 뛰어든 「책동네」의 초보자였다. 직장에서 승진도 빨랐으나 문학전문 헌책방을 내는 등 문학과 책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해 결국 「외도」가 본업이 된 셈이다.
『가만히 앉아서 책만 읽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장이 직접 창고에서 책을 묶고 정리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아요』 그는 올해로 출판계 입문 10년째지만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이제까지 「문이당 소설선」 「문이당 산문선」 「문이당 총서」 등 70여종을 냈고 올해는 15종을 계획하고 있다. 운이 좋아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 「경제에세이」 「매월당 김시습」 「지금 당신의 자녀가 흔들리고 있다」 등은 베스트셀러가 됐으나 지난해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7월 어느날 디스켓 하나가 들어왔다. 소설 「아버지」였다. 마침 특별히 할일이 없어 심심풀이삼아 직접 원고를 보다 소설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에 많은 눈물을 쏟았다. 가정에서 소외당하는 아버지의 외로움을 진솔하게 그린 내용에 공감, 책을 내기로 하고 무명 작가를 부랴부랴 찾았다. 직원들은 휴가까지 반납, 20여일만에 책을 서점에 깔았다. 「아버지 오늘 당신이 무척 그립습니다」는 광고카피는 많은 사람을 울렸고, 기업체의 「명예퇴직 바람」과 맞물려 책은 날개돋친듯 팔렸다. 많을때는 하루에 2만부의 주문이 밀려들었다. 「너무나 감동적이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 같아 밤새도록 울었다」는 내용의 팩스와 편지가 출판사로 수백장씩 날아들었다. 엄청난 반응이었다. 요즘도 하루에 2,000∼3,000부씩 나가는 「아버지」는 이달말께 100만부를 돌파하게 된다.
임씨는 앞으로 돈이 없어서 못냈던 책을 펴낼 계획이다. 김원일, 김주영씨 등 국내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소개하면서 기회가 되면 인도문학선집도 번역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아버지」덕분에 빚도 갚고 아버지로서의 체면도 살렸으나, 명퇴바람에 버림받고 고개숙여 살고 있는 이 땅의 많은 아버지들에게는 공연히 빚을 진 것같아 가슴 아파한다.<여동은 기자>여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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