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을 유치하면서 어려움을 절감한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제스포츠외교가 아직 전문분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생소한 분야인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아전인수식으로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다.교통·통신의 발달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대가 되었다. 국제사회를 연결하는 분야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국방·안보와 경제·무역, 문화교류 분야이다. 이 중 문화교류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국제스포츠이다.
국제스포츠는 위성통신, 텔레비전의 발전과 함께 커다란 사업분야로 자리잡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의 텔레비전 방영권료는 미국시장을 제외하고 11억달러에 계약됐다. 입장료와 각종 마케팅사업 수입을 합치면 총수입은 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스포츠가 중요한 시장으로 자리잡으면서 기업의 참여도 크게 늘어났다. 94년 월드컵대회 공식 후원사의 경우 4년간 4,000만달러의 후원금을 내고 월드컵 엠블렘 등의 독점 사용권을 가졌다. 우리 기업도 장기적 안목에서 스폰서 참여를 모색해야 한다.
국제스포츠와 국가간 정치·외교의 관계도 중요하다. 200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에는 호주의 시드니와 중국의 베이징(북경)이 마지막까지 경합했다. 미국의 상하 의원 100여명은 인권문제를 이유로 베이징 유치에 반대하는 서명을 했다. 우리 정부나 국민의 여론은 대체로 중국을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3차투표까지 간 결과 베이징은 2표 차로 패했다. 중국은 아직도 한국이 베이징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한중관계는 물론 우리의 월드컵유치 활동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 스포츠외교에서 국가이익이 최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상식이 지켜지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2002년 월드컵은 스포츠를 통한 세계평화라는 이상에 가장 부합하는 대회이다. 남북관계의 발전,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을 가져올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이다. 작년에 한중 축구정기전이 시작되었고 올해 한일 정기전이 부활된다. 또 유럽의 챔피언스컵처럼 각국의 클럽팀들이 참가하는 「동북아시아컵대회」가 추진되고 있다.
축구는 유럽통합에 크게 기여했다. 유럽에서는 클럽 또는 국가대표팀의 국가대항전을 보기 위해 연중 수백만명의 젊은이들이 국경을 넘어 이동한다. 이는 국가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계기가 된다. 동북아시아에서도 축구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02년 월드컵과 관련한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월드컵경기의 북한개최 문제이다. 남북관계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므로 신중하게 노력해야 한다. 88년 올림픽 때처럼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우리 스스로 북한의 참여를 배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100만명 이상의 외국관광객을 받아들일 자세와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중요하다.
월드컵대회는 국내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스페인은 82년 월드컵대회를 계기로 국민통합에 성공한 케이스다. 스페인의 경우 언어가 다른 각 지방간 민족갈등이 우리의 지역감정보다 훨씬 더 심각했는데 월드컵을 계기로 민족대립이 없어졌다고까지 말한다. 국민통합과 국가이미지 제고를 바탕으로 스페인 경제는 크게 성장했다. 82년 1인당 국민소득은 5,000달러 수준이었는데 10년후인 92년에는 무려 1만4,000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월드컵을 치르기까지 앞으로 5년이 남았다. 월드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좋은 점은 무수히 많고 그 중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분야도 많다. 경제나 국제관계 등의 모든 분야에서 월드컵개최의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나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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