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아이는 체질상 쉽게 피곤하니까 쉽게 신경질을 냈다. 그래서 나무처럼 강인하게 자라라고 숨결이 얼어붙는 날에도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거나 목도리를 둘러주고 걸려서 산책을 다녔다. 그랬지만 아이는 크니까 아플 때는 남보다 먼저 아프고 체육점수는 전교에서도 바닥이었다. 어릴 적엔 자정이 되어도 눈이 초롱초롱하던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할 나이가 되니 영락없이 학교 다닐 때의 나처럼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났다. 부모가 책을 많이 읽으면 아이들도 따라 읽는다고들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것 또한 우리 아이들은 보여 주었다. 국어는 별로 소질없는 제 아빠, 수학은 방정식 속에서 헤매던 나, 텔레비전 좋아하는 건 제 아빠, 남의 일에 흥분 잘 하는 건 나 등 우리 부부가 일치하지 않는 점을 『어쩌면 이럴까』싶게 안좋은 쪽으로 족집게처럼 골라 닮았다.한 아이는 사춘기의 한가운데에, 다른 아이는 사춘기로 서서히 접어들던 어느 날 아이들과 좌충우돌하고 그 아빠와도 서로 당신을 닮았느니 하며 탓을 하다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교육무용론.
정말 여러 날 우울했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단 한가지만은 확실히 성공했다. 존대말 쓰기! 아이들이 떠든다고 더 큰 목소리로 꾸짖고 이 썩는다고 콜라병에 가짜 약처방 붙여둔 채 혼자 콜라 마시다 들키곤 했던 말 따로 행동 따로가 특기이던 내가 존대말만큼은 일관되게 가르쳤다. 물론 아이들이 어렸을 땐 나도 아이들에게 존대말을 썼다. 영어 문장을 그대로 번역한 우리말에다 경상도 억양까지 더해 『여보세요, 여기는 조00입니다. 우00씨 계십니까?』 아이가 열 살된 제 친구에게 걸던 존대말 전화가 때때로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었다. 또 아이들이 크면서 자주 제 부모가 보수적이라느니 남들은 부모와 반말을 쓰니 친구같다느니 하며 불평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피곤한 말씨름 대신 소신대로 확실한 대답을 했다.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산다.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한』<도서출판 소화 편집부장>도서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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