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광행위가 신성한 땅에 대한 모독은 아닐까?/부처닮은 사람들이 욕심없이 사는 땅/천국에 들기에는 내가 너무 많이 가졌구나소설가 박완서(66)씨에게 티베트는 무엇보다 우선 「모독」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땅이었다. 지난해 5월말에서 6월초 티베트를 여행한 노작가는 여행기의 제목을 「모독」이라 붙였다.(학고재간)
왜 모독일까. 지구상에서 얼마 남지 않은 순결한 땅 티베트, 평균 표고 4,500m로 하늘과 늘 가까이 맞닿아 있은 땅, 세계의 불가사의라는 포탈라 궁전이 자리잡은 라싸가 있는 곳. 그곳을 보고 겪은 이야기가 왜 모독일까.
해답은 여정의 말미쯤에 나온다.
「우리의 관광 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으니. 당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 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 주오」
이 리얼리스트 노작가는 순박한 자연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보러 찾아가는 행위 자체를 티베트에 대한 모독으로 여긴 것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의 버릇처럼」 여행지에 대한 사전 예습 없이, 노구를 이끌고 고산병을 걱정하며 티베트에 도착한 작가에게 처음 열린 건 「그렇게 싱싱하게 위협적인 하늘」이었다. 「태초의 하늘빛이 저랬을까? 그러나 태초에도 티베트 땅이 이고 있는 하늘빛은 다른 곳의 하늘과 전혀 달랐을 것 같다. 햇빛을 보면 그걸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다. 바늘쌈을 풀어 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엔 적의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산소가 희박한 공기층을 통과한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은,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일 것이다」 그 하늘빛을 따라 뱃전에 넘실대는 얄룽창포 강물에 라면을 끓여먹고, 태초의 혼돈 같은 거대한 흙바람의 소용돌이를 만나며, 「옴마니반메훔」(직역하면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란 진언을 줄창 입에 달고 있다시피 한 사람들과 소주와 막걸리 비슷한 토속주도 나눠 마시면서, 작가는 여정을 계속했다.
여정에서 노작가를 끊임없이 혼란스럽게 한 것은 티베트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멀리 포탈라 궁전의 금박 지붕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에서부터 온몸을 던져서 땅을 기며 몇날 몇십일도 좋다고 오체투지하는 사람들. 「수양이나 투쟁으로 얻은 것이 아닌 천성적인 자유스러움」을 그들에게서 본다. 「내가 보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저 사람들이 바로 부처로 보이고 절 안의 부처가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저들이 부처에게 그리도 열렬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갈구하는 건 무엇일까? 우리가 인간적인 욕망을 초극하려고 몸부림치듯이 저들은 저절로 주어진 성자 같은 조건을 돌파하려고 몸부림치는게 아닐까」.
세균이나 바이러스만 발견해도 거기에다 제 이름을 붙이고 싶어하는 서양 문명이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을 붙인 산을 티베트인들은 「초모랑마」라 부른다. 여정의 마지막 초모랑마로 가는 길에서 작가는 「싱아」를 발견했다. (그의 소설 중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있다). 「긴가 민가 했었는데 영락없이 어린 날의 그 싱아가 풀섶에 지천으로 나 있지 뭔가. 살찐 줄기에 물기도 많아 꺾어서 먹어 보니 바로 그 맛이었다」.
이런 기쁨과 함께 「우리와의 만남이 저들에게 모독이나 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하는 걱정을 다시 가지며 티베트를 뒤로 해 네팔로 발길을 잡는 작가는 이렇게 되뇌고 있다.
「나는 천국에 들기에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구나」<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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