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목천자전·신이경’ 국내 최초 번역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목천자전·신이경’ 국내 최초 번역

입력
1997.01.27 00:00
0 0

◎레테의 강 건너편 동아시아 신화를 찾아 나선다/이성중심주의에 가려 민간신앙·도선사상의 형태로나마 우리 삶에 살아있었던 동양적 상상력의 기저신화. 우리는 무엇을 머리에 떠올리나.

우선 그리스·로마 신화, 혹은 20세기의 컴퓨터 신화, 그도 아니면 아무개의 무슨무슨 성공 신화… 이런 것들 아닐까?

하지만 우리가 망각해 버린 신화가 있다. 모르는 새 일상적으로 쓰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녹아 있는, 선조들의 삶에서부터 전해져 지금 우리의 생활에 살아 숨쉬고 있는 신화 말이다. 동아시아적 신화이다.

「목천자전」과 「신이경」은 바로 이 신화적 상상력의 원천인 고전들. 이들이 송정화(27·고려대 중문과 박사과정), 김지선(29·〃 〃 수료) 두 젊은 여성에 의해 국내 최초로 번역됐다(살림간).

성인이라는 말, 사전적으로나 요즘의 통상적 의미로는 「지덕이 뛰어나 세인의 모범으로서 숭상받을 만한 사람」인데 「신이경」은 그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서남쪽 변경에 있는 어떤 사람은 키가 1장이고 배 둘레는 9척이다. 거북이와 뱀을 밟고 있고 머리에는 붉은 새를 쓰고 있으며 왼손은 푸른 용에, 오른손은 흰 호랑이에 기대고 있다… 강과 바닷물의 분량과 산과 바위의 갯수를 기억하며 천하의 새와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다… 이름을 성이라고 하며 일명 철·선·무부달이라고 한다」.

책 속에 한자가 몇개만 섞여도 부담을 갖는다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카오스라는 말이 먼저 연상될 「혼돈」은 원래 짐승의 이름이었다. 「곤륜의 서쪽에 있는 어떤 짐승은… 누군가가 덕행이 있다고 하면 가서 들이받고, 흉악하다고 하면 쫓아가서 의지하는데… 미련하게 앉아 하는 일 없이 항상 자기 꼬리만 씹고 빙빙 돌며 하늘을 보고 웃는다」. 「장자」는 「사람들은 모두 7개의 구멍이 있어 이로써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쉬는데 이것에만 (구멍이) 없다」고 혼돈을 묘사하고 있어, 둘을 비교해 읽어도 재미있다.

「목천자전」과 「신이경」에는 이처럼 우리가 평소 그 본래의 의미를 의식하지 못하는 화석화한 관념의 원천이 무엇인지가 담겨있다. 얼핏 황당무계하게 보일 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바로 동아시아적 상상력의 기저를 이룬 사고의 원형이다. 그 세계는 유교와 서구의 근대 합리주의라는 동·서양의 이성중심 사고에 가려 빛을 잃었던 「낭만」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목천자전」은 중국 최고의 신화서인 「산해경」과 쌍벽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 전국시대 전후로 추측될뿐 정확한 성립 시기와 작자는 알려져있지 않다. 내용은 주나라 목왕이 여덟 필의 준마를 타고 곤륜에 이르러 선인 서왕모를 만나는 과정을 쓴 것으로 「목천자의 서방 여행기」라 할 수 있다. 역사 지리 종교 등의 범주에 속할 내용들을 서사적 구조에 담고 있어 후대 중국소설의 원형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불어 번역본을 제외하면 한국어 번역이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라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신이경」의 저자는 한 무제 때의 기인으로 유명한 동방삭으로 알려져있다. 「혼돈」같이 괴상하고 기묘한 이야기들이 풍자적으로 펼쳐진다. 지상을 중앙과 사방, 사간방으로 9등분해 이 방위에 따라 주변의 사물들을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체제와 내용이 몇세기 앞서 지어진 「산해경」의 패러디라 할 만하다 (「산해경」은 중앙과 정사방의 5방으로 나눴다).

한편 두 번역자는 이화여대 중문과 대학원 출신. 이들의 지도교수로 85년 「산해경」을 국내 최초로 완역했던 정재서(45) 교수는 대학원생들의 학위논문 작성시 철저한 원전 역주를 훈련시켜 고전의 잇따른 완역이라는 결실을 이뤄내고 있다.

정교수는 『민간신앙이나 신선사상, 도교사상 등의 형태로나마 우리의 삶에 살아 있었던 신화적 상상력은 그간 너무나 망각돼 왔다』며 『리얼리즘으로 대표되는 이성 중심주의 이면에 가려진 환상적 사고의 거대한 힘을 되살려 동아시아 문화의 기층에 대한 총체적 파악에 나서야 한다』며 그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지괴 혹은 신괴소설로 불리는 태동기 중국 서사문학의 대표작인 「수신기」도 곧 역주해 발간할 계획이다.<하종오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