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재즈필링 무르익은 50∼60년대 녹음 노래집 등이것도 재즈, 저것도 재즈, 왠지 독특해 보이면 이거 또 재즈…. 제갈피 잡지 못하는 90년대 한국의 「재즈 봇물」 속에서 돋보이는 소식.
지난해 6월, 78세로 세상을 뜬 「노래의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 of Song)」 엘라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최근 버브(Verve)사가 내놓은 「엘라 피츠제럴드 노래집(Songbook)」 1∼3집은 그 서곡.
여성 재즈 가수들이 대를 이어 불러 오고 있는 재즈의 고전들, 보컬 스탠더드가 최고조로 구현된 작품이다. 모두 50, 60년대 녹음만을 대상으로 했다. 바로 그 특유의 재즈 필링이 한껏 익은 때.
빌리 할러데이는 섬세하게, 그러나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처절하게 흑인 여성의 운명을 노래했다. 또 새러 본은 클래식 가수 뺨치는 가창력과 여느 재즈 가수를 무색케 하는 현란한 스캣으로 재즈 보컬의 극한점을 제시했다.
엘라는?
이들의 종합이면서, 또한 그 너머다. 「노래집」은 자신의 노래 솜씨만을 뽐내는 마당은 아니다. 전통의 힘, 자신의 노래가 있기까지 켜켜이 쌓인 미국의 음악전통에 대해 가수로서 최대의 경의를 표할 줄 안다.
그것은 곧 「재즈적 미덕」이다. 콜 포터, 듀크 엘링턴, 제롬 컨, 어빙 벌린 등의 재즈에서 조지 거쉰의 클래식까지 그에게는 동격이었다.
유행가에서 클래식까지, 미국의 음악 유산은 피츠제럴드라는 걸출한 가수를 만나 한 가닥으로 정리되고 형체를 부여받았다. 그는 생시 그들의 노래집을 각각 한 번씩 섭렵했다.
노래집에는 「언제부터 이 일은 시작됐는지(How Long Has This Been Goin’On)?」 「고독(Solitude)」 「내가 사랑하는 남자(The Man I Love)」 등 감미로운 발라드에서,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일 뿐(Just One Of Those Things)」 「사랑 대매출(Love For Sale)」 등 재즈적 활력이 넘치는 고전까지 정리돼 있다.
그의 노래에 대한 평. 「몸속 깊이 배인 재즈 악구(jazz phrasing), 정확한 발음, 아이같은 사랑스러움과 따스함, 담백한 표현」 등등. 사랑과 실연의, 진부한 유행가들이 엘라의 보컬을 통해 예술로 승화한 것이다.
그가 숨졌을 때, 외신들은 일제히 머릿기사로 부음을 띄웠다. 250장의 앨범 발표, 그래미 13차례 석권 등의 객관적 기록 뒤를 가슴 아픈 사실이 따랐다. 세상을 뜨기 3년전, 당뇨병의 심각한 합병증 때문에 두 다리를 무릎 아래로 절단해야만 했던 것.
그러나 재즈의 힘으로, 엘라는 자유다.<장병욱 기자>장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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