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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자기발견,예술(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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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자기발견,예술(문화칼럼)

입력
1997.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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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이가 대학 입학을 생각할 나이가 됐을 때의 일이다. 집에 놀러 온 손님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와서 고려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미국의 처녀가 있었다. 우리 아이의 대학 입학과 진로 문제가 화제가 됐다.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그의 질문에, 의과대학을 가서 의사가 될까하지만 아직 미정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젊은 강사는 여름 방학 같은 때 병원에서 일을 얻어 해보고 의사의 일이 해 볼만한 지, 그 직업이 성격에 맞는지, 이러한 탐색 기간을 갖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충고했다.그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충고는 학교와 학과 및 진로 선택을 점수에 맡기고 모든 것을 불꽃 튀는 점수 투쟁에 걸어야 하는 한국 사정을 전혀 모르는 요순시대에서 온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하고 옳은 말이 보통사람의 입에서 쉽게 나오는 시대가 요순시대일 수도 있다. 정상적인 사회란 보통 사람의 말과 행동도 깊은 지혜를 가진 사람의 말처럼 지혜로운, 그런 사회일 것이다. 자신의 앞날을 새로 생각해야 하는 청소년이 장래를 작정하기 전에 그것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또 그것을 경험으로 시험하고, 사회에서 어른들이나 제도가 이를 도와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도 옳은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또 이러한 간단한 생각의 실천으로부터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이다. 다만 최근에 와서 입시제도 개혁을 위한 여러 조치들이 시도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대학에서는 요즘이 입시의 시즌이지만 금년에 시행되는 제도만으로도, 종전 제도의 야만성은 조금 완화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학 입시는, 앞으로 더, 인간이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공부하고 사회화하면서, 개인적으로도 행복을 얻고 자기를 실현하는 그러한 인생과정의 자연스러운 고비가 되어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진로 선택은 사람의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고비를 이룬다.

장래 직업의 안정과 사회적 신분이 그것으로 결정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확립과 자기 발전의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공부와 직업이 자기의 성향과 준비에 맞는 것이라면, 거기에 성공할 확률이 더 커질 것임은 분명하다. 동기와 흥미는 공부와 일의 반을 마친 것과 같다. 그러나 자기 발견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인생의 경험이다. 인생의 중요한 경험들, 가령, 사랑과 같은 것이 그것의 현실적 열매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뜻이 있듯이,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 안에 잠재해 있는 힘을 대면한다는 것은 뜻있는 경험인 것이다. 자신의 힘을 점검하는 것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작업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내면의 신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이끌어 세계와 삶의 보다 깊은 의미의 탐구로 나아가게 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자기 발견을 위하여 제도적 배려를 하지 않는 사회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비참을 증대하게 함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성실과 창의의 기본이 될 심리적 자원에 큰 손실을 가져온다. 이 배려의 결여는 특히 예술적 재능에 있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예술가와 예술작품도 세계적인 수준이 되기를 기대하는 소리가 높다. 이 기대가 쉽게 충족되지 아니하는 데에는 다른 원인들도 있지만, 큰 안목으로 볼 때, 원천적 문제의 하나는 이 결여에 있다. 자기 발견, 그것도 인간의 내면 깊이 들어있는 신비한 힘을 체험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에서 위대한 예술이 가능할까.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그의 내적 체험, 특히 젊은 시절의 내적 체험이다. 이 체험은 개인적인 문제이면서, 그러한 체험을 허용하는 사회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김우창 고려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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