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금융’ 의혹 확산 진실 밝혀내야한보그룹에 대한 5조원대 부실대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금융계는 우선 1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해당 채권은행의 은행장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은행들은 한보철강의 사업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자금을 물붓듯 쏟아부었다. 통상 100억원대이상의 거액대출은 은행장이 결정하는 것을 감안할 때 책임을 면키 어렵다. 은행장들의 「오판」으로 해당 은행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제3자인수가 진행되는 동안 이자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인수가 성사되더라도 최소한 담보부족(7,827억원)만큼 돈을 떼이게 됐다. 이처럼 은행권이 한보철강부도로 입게될 손실은 총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금융권은 은행장들이 은행을 부실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게 뻔한 부실대출을 혼자 결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평소 은행감독원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은행장들이 은감원의 경고까지 무시한 채 거액대출을 계속한 사실은 이러한 의혹을 더욱 짙게 한다. 은감원은 지난해 10∼11월 이들 은행에 대해 정기검사를 실시, 한보그룹에 대한 여신에 주의를 촉구했다. 그러나 불과 한달도 되지 않아 채권은행들은 5,000억원대 자금을 추가 지원했다. 은감원도 이같은 대출과정에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은감원 관계자는 『한보철강같은 정책사업에 자금을 공급하는데 대해 일일이 대출과정을 간섭할 수는 없었다』며 『은행들이 스스로 부실여부를 현명하게 판단, 결정하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따라서 금융권은 한보철강에 대한 부실대출의 배경에는 은행장이나 은감원조차 어찌할 수 없었던 외압이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물론 권력핵심부인 청와대측이 명시적으로 대출을 지시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은행들이 추가융자를 해줘야 할지 청와대측에 질의하면 『국가 기간산업체인데 망하게 방치해서야 되겠느냐』는 말로 간접적으로 지원을 지시하곤 했다고 관계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금융권은 또한 현 정부들어 은행권에 대한 외압의 성격이 은감원 재경원을 통하는 「관치금융」라인에 의해서보다 정치권이 직접 압력을 가하는 「정치금융」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은행장 인사철만 되면 『어느 행장은 정치권 실세인 누구누구와 가깝다. 누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았던 것도 「정치금융」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철수 전 제일은행장과 손홍균 전 서울은행장 구속사건때도 이들 행장과 정치권과의 불협화음이 사건의 진짜 배경이었다는 소문이 금융계에 파다했다.
더구나 한보그룹은 그동안 정치권실세들과의 밀착설이 끊이지 않았던 기업이다. 수서사건 비자금사건 등 숱한 「위기」를 헤쳐나와 「로비의 귀재」로 통하는 정태수 총회장이 수조원대 은행 돈을 주머니돈처럼 거침없이 가져다 쓸 수 있었던 것은 후원세력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한보사태가 은행장에게 책임을 묻는 수준에서 유야무야된다면 「정치금융」의 병폐가 또다시 반복될 것이란 지적이다. 금융권은 『한보사태의 진원지인 권력핵심부와 정치권의 개입을 분명히 드러내 청산하지 않는다면 정치금융의 폐해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유승호 기자>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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