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사태가 가뜩이나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경제에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성격은 다르지만 파문은 5공시절의 이·장사건에 버금갈지 모른다. 정부는 한은의 대금융권 1조원 긴급 방출, 한보그룹 협력업체 진성어음의 일반대출전환, 법정관리 신청검토 등 일련의 비상조치를 속속 취해 가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금융권에 지각변동과 같은 대충격을 미칠지 모르는 이 사태를 가능한한 빨리 파급영향이 최소화하는 선에서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그러나 이번 사태는 부도발생 그 자체뿐 아니라 수습과정에서도 국민들의 직·간접적인 희생과 부담 위에 이뤄지는 만큼 문제의 한보철강에 대한 파격적인 금융지원과 관련된 의혹들이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의혹들은 담보요구 등 까다롭기로 유명한 우리나라 은행들의 보수적인 금융관행에 비추어 『모종의 외압』이 아니었으면 그만한 엄청난 규모의 대출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데 집중되고 있다.
단적인 예를 보자. 은행감독원에 따르면 한보철강 등 한보그룹 13개 계열기업에 대한 은행 등 금융기관의 총여신액은 95년초 1조9,500억원 수준이었는데 불과 2년 사이에 5조8,000억원대로 약 3조9,000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한보그룹의 주거래 은행이 된 제일은행의 경우 93년말까지만 해도 한보그룹 관련여신이 거의 없었으나 94년부터 급증, 현재에는 한보철강 1조1,000억원(순여신) 등 총 1조7,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자기자본(96년말기준 약 1조5,000억원)을 훨씬 초과하는 금액이다. 제일은행측은 『당진공장 건설자금을 지급보증 형태로 계속 지원하다 보니 여신액이 늘어났다』고 해명했다 하는데 이것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금융계의 공통된 견해다. 심지어 채권은행단 임원들은 『은행장들이 모종의 연락을 받고 대출결정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외압」의 정체가 밝혀져야 한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관련은행 등 금융기관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그 막대한 부실대출의 인과에 대해서 조사, 공표해야 할 것이다. 재정경제원, 은행감독원 등은 은행업무에 대해 감독권한이 있으므로 당연히 이번 사태에 대해 소명을 해야 한다.
국민의 의혹이 깊고 또한 철저한 조사가 요구되므로 재정경제원이나 은행감독원보다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감사원이 나섰으면 한다.
한편 국회도 진상조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는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야 한다.
여당인 신한국당이 오히려 먼저 나서거나 적극적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배후세력이 있는지 없는지, 정경유착인지 아닌지 국민의 의혹은 방치될 수 없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의혹해소는 헌법상의 책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