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유고출신의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의 내한 연주회를 본 적이 있다. 2년전에 이미 한국을 방문했던 그의 두번째 내한 연주회는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가 다른 피아니스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사실 포고렐리치의 연주는 듣기에 어색할 정도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있다. 언젠가 그가 녹음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은 적이 있는데 모차르트를 저렇게 반모차르트적으로 연주할 수도 있을까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그는 두번째 내한 연주회에서 쇼팽과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스크리아빈의 작품을 연주했는데, 역시 예상했던대로 상당히 자의적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있었다. 아마 평소에 비슷비슷한 연주만 들어왔던 청중들에게 그의 연주는 일종의 파격이었을 것이다. 작곡가가 만든 곡을 연주하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고, 따라서 해석에 있어서 어느 정도 연주자의 재량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의 해석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감이 있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그날의 관객들은 그의 연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가히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사실 그동안 그의 연주에 대해 지나치게 파격적이라느니 객관성을 잃었다느니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센세이셔널리즘에 불과하다느니 하는 비판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이는 그가 이름에 값하는 뛰어난 연주기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신이 내려와서 연주하는듯 완벽한 테크닉, 그리고 음악에 몰입하는 놀라운 집중력은 그동안 그의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온갖 비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만약 포고렐리치가 피아니스트로서 완벽한 연주기량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독자적인 해석이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빛날 수 있었을까. 요즘 모자라는 기량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센세이셔널리즘에 의존하는 연주자들이 많은데 포고렐리치는 진정한 개성과 얄팍한 속임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