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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 백기투항 5시간만 빨랐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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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 백기투항 5시간만 빨랐어도…

입력
1997.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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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부도내랴… 전부가 아니면 전무” 도박/“계열사 몇개는 건질수도 있었는데 다 날려”한보철강 부도사건은 정태수 총회장이 「모든 것」을 잃은 한판의 큰 도박이었다. 전격 부도처리되기 불과 1시간30분전인 23일 하오 4시까지만 해도 정총회장은 적자인 한보철강을 잃는 대신 일부 계열사는 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부당국과 채권은행단이 가지고 있는 「부도카드」를 과소평가, 무작정 버티다가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정총회장이 채권은행단에 한보철강 경영권포기 거부의사를 최종적으로 전달한 후 불과 30분만에 그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정부당국으로부터 부도결정이 긴박하게 전달됐고 한보철강 어음은 모두 부도처리되고 말았다. 정총회장측은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이 현실화하자 이날 밤 9시에야 경영권포기각서를 싸들고 제일은행을 찾아 백기투항했으나 그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난 상태였다. 약 5시간 사이에 그의 운명은 크게 바뀌고 만 것이다.

정총회장은 지금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5시간만 일찍 「현명한 판단」을 내렸더라면 한보철강을 세워놓은 기업가로서의 공로를 인정받고 「눈물 값」이라도 얻어 그의 손익계산서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영권 포기에 따른 「눈물 값」은 얼마나 될까. 정총회장은 우선 채권은행단과의 협상결과에 따라 한보철강을 제외한 그룹계열사 일부를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한보철강이 은행관리로 넘어가면 부도압박이 사라지고 공장건설도 은행지원으로 완공될 수 있다. 이 경우 한보철강의 자산가치는 훨씬 커지게 된다. 은행관리에 들어간다 해도 법률적인 소유권은 정총회장에게 남아있어 부채를 제외한 자산차액만큼 그의 지분을 주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란 계산이다.

정총회장은 그러나 「전부 아니면 전무」의 도박을 하다 재산과 명예를 모두 잃고 말았다. 이미 부도처리된 한보철강 (주)한보 등 그룹의 주력업체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그의 주식은 전량 소각되고 소유권의 소멸, 그의 손에 남는 것은 거의 없게 된다. 지금으로서는 건질게 아무 것도 없다. 정부당국과 채권은행단이 부도난 한보그룹에 특별자금지원 등의 특혜를 주는 만큼 정총회장에게는 가혹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특혜시비에 휘말려 정부 여당이 큰 곤경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정총회장이 마치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던게 최대의 악수였다』며 『정부당국으로서는 한보가 정치권의 비호하에 성장했다는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한보문제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할 것이고 그럴수록 정총회장의 입지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유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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