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에서 미국의 미래를 본다. 그것은 희망과 기대감을 예견케한다.20일의 42대 대통령 취임식을 전후해 빌 클린턴 대통령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국가 통합」이다. 정파간, 인종간, 이데올로기간의 화합. 이를 통해 미국을 새로운 희망과 기회의 나라로 만들자고 호소한다.
그는 국가 통합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가족과 함께 흑인교회에서 흑백평신도들과 어울려 예배를 보았다. 여야 중진의원들과는 오찬을 같이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인종간, 정파간의 화합을 상징하는 몸짓의 시작이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의 언행에서만 미국의 미래가 보인 것은 아니다. 하루 뒤 하원 본회의의 모습이 미국의 미래를 보다 확실하게 진단해 주고 있다. 본회의는 하원 윤리규정을 위반한 뉴트 깅그리치 의장에게 벌금 30만달러와 견책을 내용으로 하는 징계를 결정했다. 그의 징계안은 395―28로 통과됐다.
깅그리치 의장의 하원 윤리규정 위반 사항은 두가지다. 면세혜택이 있는 대학강의와 주민들과의 토론형식으로 진행된 TV강연의 기금을 정치목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 첫번째다. 두번째는 공화당 후원조직을 통해 개인적인 이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깅그리치는 공화당 의원으로는 68년만에 처음으로 하원의장에 재선된 거물 정치인이다. 정원이 435명인 하원은 공화당 소속 의원이 227명, 민주당 207명, 무소속 1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과반수를 점한 공화당 의원들만 동료애를 발휘, 손을 들지 않았어도 그는 징계를 피할 수 있었다. 반대표를 찍은 28명이 모두 공화당 의원이라 하더라도 199명의 같은 당 동료들이 그의 징계에 찬성한 셈이다.
미국의 미래가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잘못이 있다면 하원 의장까지도 처벌한다는 냉엄한 원칙의 준수. 비록 같은 당 소속이며 당 지도자라 할지라도 사를 뛰어넘어 공적으로 단죄해야 한다는 정치풍토.
이런 차원에서 미국의 의회정치와 우리의 그것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국에서 국회의장이, 아니 보통의 국회의원이 이 정도의 윤리규정을 위반했을 때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 과연 미국처럼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에 따라 징계가 따를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물론 우리 국회도 재산 불성실 신고, 품위 손상 등이 적발되면 윤리위원회에서 조사, 징계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제소된 사례는 있었지만 합당한 징계를 받았다는 결과는 접하지 못했다. 왜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국회의원들의 의식구조라 할 수 있다. 특별한 정치적 복선이 깔리지 않은 이상 윤리문제로 징계, 당사자에게 치명타를 주고 받지 말자는 암묵적 동의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리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보자. 이번 하원 본회의에서 깅그리치 의장의 징계안을 이끈 윤리위원장은 8선 여장부 낸시 존슨(61)이다. 존슨은 깅그리치와 같은 공화당 소속이며 그의 지원을 받아 윤리위원장이라는 자리에 올랐다. 그와는 상당한 친분관계도 맺고 있다.
존슨은 그러나 윤리위원장으로서의 본분에 철저한 모두발언을 했다.
『법위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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