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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대학입시/이인호 주 핀란드 대사(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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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대학입시/이인호 주 핀란드 대사(아침을 열며)

입력
1997.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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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대학입시에서는 고교 내신성적과 논술시험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 확실한 모양이다. 혹시 앞으로 그 제도를 개선보완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모든 시험이 논술식으로 이루어지는 이곳 핀란드의 대학신입생 선발제도를 알아본다.이곳의 대학신입생 선발은 고등학교 졸업 전에 누구나 치러야 하는 졸업시험 성적을 근거로 이루어지며 법과대학 같은 몇몇 특수대학들만이 그 위에 특별시험을 더 요구한다. 따라서 고등학교 내신성적의 객관성이 문제되거나 입학준비로 하급학교 교육내용이 부실해지는 폐단이 없다. 전국공통의 이 졸업시험은 필수 6과목과 자유선택 2과목에 대한 과목별 필기와 구술시험, 그리고 최종 종합면접으로 구성되며 낙방하는 사람은 다시 시험을 쳐야한다.

논술식 필기시험은 과목당 6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실력을 드러낼 충분한 기회를 가진다. 현재 필수과목으로는 공용어인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그리고 각자가 선택한 외국어, 모두 세 과목이 어학이다. 현대과목(Modern Subject)이라 불리는 마지막 필수에서는 수학 자연과학 역사 철학 문학 심리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분야별 또는 종합적으로 출제되는 여러 문제들 가운데서 수험생이 몇 문제를 선택하여 6시간 동안 쓰게 되어 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논술과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이 현대과목이지만 출제된 문제들은 어느 것이나 체계적 지식과 논리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것이지 상식 수준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보스니아나 소말리아 사태 같은 내전이 발생할 경우 제3의 국가가 개입을 할 권리 또는 의무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칸트의 도덕론에 비추어 이야기하라』 『히틀러가 독일인들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같은 것이고 수학이나 자연과학에서도 매우 높은 전문적 수준의 문제풀이가 요청된다.

한 학생이 무려 36시간의 논술식 시험을 칠 경우 제대로 공부를 하여 지식만 아니라 독자적 사고력, 상상력, 문장력을 갖춘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제도가 갖는 더 큰 장점은 대학에 가지 않는 사람이라도 고교 졸업전에는 모국어와 두개 이상의 외국어에 대한 기본 실력과 일정 수준의 종합적 지식과 사고력을 기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핀란드인들은 운전기사고 가정주부고 웬만한 사람이면 영어로도 아쉽지 않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알며 자기의 욕망이나 주장과 객관적 사실을 구분할 줄 아는 합리적 사고력을 발휘하는듯 하다.

실력을 이처럼 종합적으로 평가한 자료가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지망순으로 학교와 학과 또는 학부를 원서에 표시해 내고 사정전문기관은 그것을 성적과 부합시켜 처리하면 된다. 객관성에 대한 시비가 있을 수 없고 요행이 작용할 겨를이 없다.

대학교육이 무상인 핀란드에서도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은 우리만큼 치열하지만 그것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소모적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처럼 시험제도의 운영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못지 않게 어려운 역사적, 자연적 환경과 싸워왔으면서도 우리보다 훨씬 먼저 6개 정당의 평화적 연립이 가능한 민주적 복지국가로 발전해올 수 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사고력의 배양을 촉진하는 졸업시험제도 때문이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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