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연구 투자없이 짧은시간에 많이 제작/하루하루 때우기 급급/최고 기자재불구 기술은 후진국 수준텔레비전은 역시 「보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보는 재미는 좋은 시나리오와 훌륭한 연출에서 나오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선명한 화면, 또렷한 음향, 잘 조화된 세트와 소품 등이다. 하지만 우리 무대는 초라하고 엉성하거나 좀 화려하다 싶으면 촌스러운 경우가 많다. 세트 촬영에선 그만그만하던 조명도 야외로 나가면 노출부족이나 과다가 번갈아 나타나면서 눈을 괴롭힌다.
몇 년에 한 번 치르는 선거 방송엔 수십억원을 쏟아붓고, 해외 로케에 돈을 물쓰듯 하는 우리 방송이지만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2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장비야 많이 좋아졌지요. 미국이나 일본에 가봐도 우리 장비보다 월등한 거 별로 못봤습니다. 하지만 방송 환경이나 질적인 수준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어요. 기술을 보는 시각 자체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송사에서 20년이상 조명 일을 해 온 한 관계자는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우리 방송이 선진국에 비해 화면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장비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방송기술의 가치에 대한 폄하와 낮은 제작비, 짧은 시간에 많은 제작을 감당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돈과 시간이 많이 투자되는 기술 문제를 외면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KBS와 MBC는 미술, 조명 등 기술부분을 분리시켜 「아트비전」과 「MBC아트센터」 등의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 방대한 조직을 운영하는 것보다 독립시킴으로써 조직의 운용을 전문화하는 한편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겠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실시한 후 오히려 기술 부분이 더욱 악화했다는 것이 내부의 평가다. 방송국이 투자는 회피하고, 의무만 지움으로써 적은 인원, 높은 이직률, 전문성 결여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 기술을 계속 배워야 하지만 방송국에서는 연구투자도 별로 안하고, 해외 연수 기회도 주지 않는다. 매일매일 방송 「때우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세트 하나를 짓는 데는 하루나 이틀이 걸린다. 그것도 밤샘 작업을 해야 한다. 가뜩이나 스튜디오가 부족한데다 그나마 세트를 고정시켜야 하는 드라마가 많아 교양이나 쇼 프로그램을 찍기엔 세트가 태부족이다. 때문에 세트를 급조해야 하고, 조명 역시 리허설 없이 그대로 실전에 돌입한다』는 게 일선 담당자들이 털어 놓는 고충이다.
KBS가 21개의 스튜디오, MBC는 10개가 조금 넘는 스튜디오를 드라마가 상당수 독차지 하고 있는 현실에선 졸속 제작에 따른 부실한 세트, 미숙한 조명이 불가피 하다는 얘기다. 소품이나 음량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로그램의 수준을 좌우하는 작가 육성도 문제다. 『방송 작가가 50∼60명에 불과하다』는 드라마 제작 파트의 불평은 사치다. 교양 프로그램의 경우 구성 작가는 거의 전부가 대학을 갓 졸업한 여성 작가들 뿐이다. 구성작가는 PD 개인이 생사권을 쥐고 있고, 수입도 불안정한데다 자료조사, 소품, 섭외는 물론 때로는 스튜디오 못질하는 일까지 강요당하고 있다. 『남자가 왜 그런 일을 하겠느냐』는 게 여성 작가들의 자조섞인 분석이다. 5년 이상의 경력자를 찾기 어렵고, 대부분 1∼2년 하다 그만 둔다. 이런 상황에 우리 교양프로가 수준 높아지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최고 수준의 기자재를 자랑하는 우리 방송이 세계 수준의 방송이 되려면 대학에서의 기술인력 양성, 방송국의 인력 전문화 노력이 병행되지 않고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 방송의 기술 수준이요? 방송을 가장 늦게 받아들인 아프리카보다도 못할 겁니다』 한 방송인이 보는 오늘의 현실이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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