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동무·고향 왜 버려야하는지…/지도자품 떠나자는 아버지를 나쁜사람 생각/우리 맞은 외할머니 반가움보다 끼니 걱정/기차속 굶주려 죽는 청년 누구탓인가요김영진(50)씨의 둘째아들 해광(13)군은 『우리가족의 로정』이라는 일기를 지난해 10월 서울 문화방송사에 보내 북한삶의 어려움과 남한에 가고 싶다는 애절한 심경을 밝혔다. 갓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교 2학년생의 눈에 비친 북한의 참담한 실상과 자유에 대한 동경은 『나는 왜 꽂피고 아름다운 고향과 정다운 동무들을 버려야 했나』로 시작되고 있다. 소년은 이어 『그것은 배고픔에 못 이겨서이지…』라면서 탈북동기가 배고픔에 있음을 자문자답했다.
일기는 그의 가족이 북한을 탈출한 96년 3월23일을 전후를 중점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기는 탈북이 지난해 3월23일임을 밝히고 있다. 『음력 2월6일인 3월23일 밤 10시 쪼각달은 지고 캄캄한 야밤에 부모님들이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두만강을 건넜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먼저 살리겠다고 강을 나중에 건넜다』
일기의 끝은 소년의 다짐이었다. 『하루빨리 자유의 나라인 한국으로 가서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 남국의 조국통일에 조금이나마 이바지 하고 굶주림에 부대기는 북한학생들과 인민들을 하루 빨리 구원하고 싶다』
일기의 중간중간에는 그 또래의 우리들 아이와 다른 「북한 소년」의 애틋한 사연이 적혀있다.
『나는 14살 아이지만 살길을 찾아 떠나가는 로정을 기록, 북조선 나의 동무들이 이글을 볼 수 있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한자 두자 적는다.
내 고향집은 4·5월이면 과수나무들이 흰색옷을 입은듯 만발한 꽃을 피우는 배나무들이 지키는 곳이다. 아름다운 내고향과 정다운 동무들을 버리고 나는 왜 떠나야 하는지. 그것은 배고픔에 못이겨서 이다. 북조선에서 내가 1년에 공부하는 시간은 도대체 얼마나 됐던가. 우리 학급 학생 42명중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은 매일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동무들은 왜 나오지 못하는가. 그것은 참기 어려운 배고픔 때문이다. 나는 정말 배우고 싶은 심정이다. 어디로 가야 배움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96·3·18(월요일) 날씨 맑음. 이날은 정든 고향 정다운 동무들과 리별하고 떠나는 날이었다. 3월19일 기차를 타고 함경북도 무산군으로 향하였다. 이날 기차에 오른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많은지. 이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목적으로 집을 떠나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침침컴컴한 기차에 올라서니 밀고 당기고 하는 바람에 나는 넘어질듯 하였다』
『96·3·20(수요일) 날씨 약간 흐림. 이날도 기차안에서 보냈다. 굶주림에 시달려 숨을 방금 지울듯한 청년이 기차 한복판에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끝내 그사람은 굶주림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렇게도 한인간의 운명을 두고 모르는체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과연누구탓이며 누구 때문인가』
『96·3·21일(목요일) 날씨 약간 눈옴. 지루함을 느끼면서 타고온 기차는 끝내 목적지인 무산역에 도착했다. 마음이 서글퍼서인지 하늘의 구름은 나의 머리위에 싸락눈을 내리게 하여 나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했다. 목적지인 외할머니네 집에 들어서니 외할머니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3·22일(금요일) 날씨 맑음. 『새벽 잠결에 할머니와 어머니간의 말씀이 오가는 것을 들었다.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로 끼니를 때우는데 너희 가족까지 왔으나 반가운 대신 걱정이 된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3·23일(토요일) 날씨 맑음. 아침을 대충 강냉이 뿌리로 만든 국수로 끼니를 하고 우리 가족은 두만강 구경을 나갔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는 남조선으로 가야만 너희들도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였다. 나라를 배반하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의 품을 떠나자는 아버지가 나쁜 사람으로 생각됐다. 아버지는 몇년전부터 남조선방송을 들으면서 남조선이 자유세계라는 것을 알게됐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지도자동지 품안의 갈림길에서 어느길을 택할지 몰랐다.
그날 저녁 10시에 도강준비에 들어섰다. 음력 2월6일이어서 조각달이 지고 캄캄한 밤이었다. 가족은 아버지를 따라 두만강 기슭에 접근했다. 새벽 2시까지 은밀히 정찰하면서 보초병 움직임, 조명 등을 파악한뒤 아버지가 명령을 내리셨다』 『새벽 3시30분에 중국땅을 밟았다. 중국땅에 와보니 먹을 것이 많고 살기도 좋았다. 나는 놀라운 일을 보고 감탄 안할 수 없었다. 나는 한국으로 하루빨리 가서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 남 북의 조국통일에 이바지하여 굶주림에 부대기는 북한 학생들과 인민들을 구원하겠다는 것을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맹세하는 바입니다』<장인철 기자>장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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