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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한국사회 방향감각 찾아야/오병헌(이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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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한국사회 방향감각 찾아야/오병헌(이렇게 생각한다)

입력
1997.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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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9개월을 서울에서 보낸 탓에 단기방문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일은 횡단보도나 계단에 그려져 있는 방향표시이다. 어떤 곳에서는 좌측, 다른 곳에서는 우측으로 통행로가 표시되어 있어 혼란을 일으켰다.한국사회의 헷갈리는 방향감각은 자동차 운전을 해보면 더 피부에 와닿는다. 경찰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차선과 신호가 아무 의미도 없다. 일방통행로를 거꾸로 질주해오는 차를 보고 기겁을 하여 급정거를 한 필자를 빤히 쳐다보면서 유유히 지나가는 간 큰 운전자에게 오히려 감탄한 일도 있다.

물고기떼 같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일본은 좀 곤란하지만, 미국이나 서유럽나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의식이 있다. 작게는 교통질서에서 크게는 사회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어떤 기본적인 합의와 이해가 있기 때문에 큰 마찰 없이 사회가 굴러가는 것이라 하겠다.

한국 사회는 많은 분야에서 방향이 덜 잡힌듯 하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군사독재가 끝나기는 했으나 아직도 국민이 일정한 방향의 정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치가는 마음대로 놀고 당적도 다반사로 바꾼다. 국민의 태도가 확실하면 당적을 바꾸는 일이 큰 범죄행위같이 취급받는 것이 영미의 관습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기묘한 경주를 보게 된다. 한 줄로 서서 같은 방향으로 뛰는 경주가 아니라, 모두가 원을 따라 달린다. 뛰고 싶은만큼 뛰다가 싫으면 옆에 비켜서 쉬고, 그러다 생각이 나면 또다시 뛴다. 이 「코커스」경주가 끝난 다음의 문제는 누가 이겼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 이긴 것으로 하자』라고 결정하고 모두가 상을 받게 된다.

한국의 정치는 코커스경주를 연상시킨다. 한동안 어떤 정당에 몸 담았다가는 슬그머니 다른 정당으로 다시 옮겨서 정치에 참여한다. 독재의 앞장을 섰던 사람이 당을 바꾸고나서는 민주의 기수같이 행세한다. 일정한 방향없이 제멋대로 뛰고 나서는 어느 누구도 벌을 받는 일이 없다. 그저 열심히 정치무대를 빙빙 돌고나면 그것으로 관록이 붙으며 유권자의 표를 얻는다.

물론 그동안 성과도 있었다. 돈과 욕설이 여전히 날아다닌 15대 국회의원선거였으나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흐뭇했던 것은 한국 선거사상 처음으로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앙선관위의 권위가 제 몫을 찾기 시작한 것도 반가운 발전이었다. 독재의 독성이 풀리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아쉽기는 하나, 옳은 방향임에는 틀림없다. 각 분야는 영향을 주고 받으며 같은 속도로 발전하게 마련이다. 한국사회도 돌고 도는 코커스게임 대신 한 방향으로 갈피를 잡아야 할 것이다.<재미교포·전 고려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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